어제 토요 새벽예배 설교에서 저의 마음을 좀 나누었습니다만 요즘 저에게는 마음의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이 무거운 짐이 하나님께서 주신 부담인지 아니면 이제 담임목사가 된 저 스스로의 조바심이나 잘 하려고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자주 주님께 여쭈어 보고 있습니다. 제 마음 속에 있는 부담은 우리가 더 기도에 헌신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교회 사이즈에서 얼마나 많은 성도님들이 평일 새벽예배나 수요예배의 자리에 계시면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확연한 사실은 요즘 새벽에 저보다 나이가 적은 사십대 초반이나 삼십대 성도님의 모습은 거의 보이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므로 누구의 삶을 함부로 정죄하거나 판단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15년 후 얼마나 많은 다음 세대 성도님들이 새벽기도와 수요예배의 바톤을 이어받을 것인가’하는 제 마음 속의 질문은 깊이 남아 있습니다. 새벽기도의 자리는 농경문화가 발달되었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구세대의 유물이 아닙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의 시작을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기도 시간입니다. 집에서 편하신 시간에 기도하셔도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함께 모여 함께 교향곡을 연주하듯이 올려드리는 합심 기도의 자리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바닷물의 3%에 해당하는 염화나트륨이 바닷물의 짠맛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저는 적어도 우리 교회 3%의 헌신된 기도의 용사들이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회가 교회를 움직이는 엔진이라고 생각할 때 수요예배나 새벽기도의 시간처럼 중요한 자리를 따로 생각할 수 없겠습니다. 영적인 싸움을 감당하는 교회에 기도의 자리가 사라질 때 악한 세력들만 결국 좋아할 것입니다. 3%는 아주 최소한의 싸움을 감당할 수 있는 마지노선입니다. 2천명의 장년 교인이라면 60명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장로님들, 목자님들, 안수집사님들, 권사님들, 제가 욕심이 지나친가요?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세요. 기도의 자리에 함께 하겠다고 결심해 주세요. 사실 수요예배나 평일 새벽기도에 전체 장년교인의 10% 정도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최소한은 아닐까요? 이것이 담임목사의 지나친 바램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새벽 시간에 늘 앉아서 기도하던 자리에서 옮겨 본당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성도님들의 뒤통수를 보며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려고 그랬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뒤통수를 보며 가정의 기도제목을 달달 외우는 수준까지 갈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