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He is Not Here)
“He is not here!”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이른 아침 무덤에 찾아갔던 여인들에게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외쳤던 말입니다(막16:6). 예수님은 다시 살아 나셨고 승천하셔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만유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미 비어 있는 무덤이 우리 신앙의 종착역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신앙은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신앙이 아닙니다. 일상의 삶 가운데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성령)과 함께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일상에 이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이 경험되시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현승 시인은 ‘부활절에’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당신의 핏자욱에선
꽃이 피어 - 사랑 꽃이 피어,
땅 끝에서 땅 끝에서
당신의 못자욱은 우리를 더욱
당신에게 열매 맺게 합니다.
당신은 지금 무덤 밖
온 천하에 계십니다 - 두루 계십니다
당신은 당신의 손으로
로마를 정복하지 않았으나,
당신은 그 손의 피로 로마를 물들게 하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유태인의 옛 수의를 벗고
모든 4월의 관(棺)에서 나오십니다.
모든 나라가
지금 이것을 믿습니다
증거로는 증거할 수 없는 곳에
모든 나라의 합창은 우렁차게 울려 납니다.
해마다 삼월과 사월 사이의
훈훈한 땅들은,
밀알 하나가 썩어서 다시 사는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 파릇한 새 목숨의 순(筍)으로....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두번째 연입니다. 시인은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무덤 밖에 계신다고 노래합니다. 온 천하에 두루 계신다고 노래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덤으로 갈 것이 아니라 무덤 밖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빈 무덤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박물관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능력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일상의 현장에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과거의 뼈들과 유물을 들여다 보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 역시도 ‘나중 열매'가 되어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스런 몸을 소유하게 될 종말의 시간을 바라보며 사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생기로 가득한 곳, 하나님으로 충만한 곳, 생명이 다시 일어나는 우리의 일상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