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11월19일

자원봉사신청서를 제출합시다.

여러분은 땀 흘려 일하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괴로움으로 여기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고통으로 여깁니다. 그렇다면 노동은 저주일까요? 축복일까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범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하시고, 사람들은 저주 받은 땅에서 평생 땀을 흘려 노동을 해서 먹고 살도록 벌을 내리셨습니다(창3:17-19).

그렇다면 노동은 저주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유혹한 뱀을 저주하셨고(3:14-15) 또한 땅을 저주하셨습니다(3:17, 5:29, 8:21).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저주하셨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평생 땀 흘려 일하도록 하신 것이 벌은 벌이지만, 저주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벌을 주신 이유는 저주 받은 땅에서 흙을 일구며 평생 땀 흘려 일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흙으로 지어진 피조물임을 깨달으며(2:7)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을 배우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3:19). 그러므로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노동을 통해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열매를 거두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노동을 천시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보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며 기쁨이고 권리와 의무이지, 가능하면 피해야 할 기피대상이나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목수로 일하셨고(막6:3),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도 쉬지 않고 일하셨습니다(마4:23, 요5:18).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파하며 선교여행을 다닐 때에 주야로 힘써 일했습니다(살후3:8). 사례를 받을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즐겁게 일하는 본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3:9). 그러면서 그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명했습니다(3:10).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십시오. 자녀들에게 흙 한번 안 묻히고 연장 한번 안 들게 하고 설거지 한번 안 하게 하는 것이 자녀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녀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가정에서 일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아이들은 직장이나 세상 어디에서도 땀 흘려 일하기를 싫어하는 ‘불한당’(아닐 不, 땀 汗, 무리 黨)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 예배 후에 사역박람회를 둘러보시고 2018년 자원봉사신청서를 제출합시다. 추수감사절을 우리에게 물려준 청교도들에게도 경건한 신앙생활, 검소한 삶과 함께 노동은 그들의 기쁨이요 권리요 의무였습니다. 일합시다. 일하되 축복으로 알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일합시다. 추수의 감사와 함께 성숙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자원봉사신청서를 제출합시다.

여러분은 땀 흘려 일하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괴로움으로 여기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고통으로 여깁니다. 그렇다면 노동은 저주일까요? 축복일까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범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하시고, 사람들은 저주 받은 땅에서 평생 땀을 흘려 노동을 해서 먹고 살도록 벌을 내리셨습니다(창3:17-19).

그렇다면 노동은 저주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유혹한 뱀을 저주하셨고(3:14-15) 또한 땅을 저주하셨습니다(3:17, 5:29, 8:21).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저주하셨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평생 땀 흘려 일하도록 하신 것이 벌은 벌이지만, 저주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벌을 주신 이유는 저주 받은 땅에서 흙을 일구며 평생 땀 흘려 일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흙으로 지어진 피조물임을 깨달으며(2:7)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을 배우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3:19). 그러므로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노동을 통해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열매를 거두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노동을 천시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보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며 기쁨이고 권리와 의무이지, 가능하면 피해야 할 기피대상이나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목수로 일하셨고(막6:3),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도 쉬지 않고 일하셨습니다(마4:23, 요5:18).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파하며 선교여행을 다닐 때에 주야로 힘써 일했습니다(살후3:8). 사례를 받을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즐겁게 일하는 본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3:9). 그러면서 그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명했습니다(3:10).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십시오. 자녀들에게 흙 한번 안 묻히고 연장 한번 안 들게 하고 설거지 한번 안 하게 하는 것이 자녀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녀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가정에서 일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아이들은 직장이나 세상 어디에서도 땀 흘려 일하기를 싫어하는 ‘불한당’(아닐 不, 땀 汗, 무리 黨)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 예배 후에 사역박람회를 둘러보시고 2018년 자원봉사신청서를 제출합시다. 추수감사절을 우리에게 물려준 청교도들에게도 경건한 신앙생활, 검소한 삶과 함께 노동은 그들의 기쁨이요 권리요 의무였습니다. 일합시다. 일하되 축복으로 알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일합시다. 추수의 감사와 함께 성숙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