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십니까?

3주 전에 어느 목자님 내외분을 만났는데, 부목자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자신이 우리 교회에 처음 와서 첫 예배를 드릴 때에 손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조용해서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주일부터는 뜻밖에 설교가 소중하게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성도님이 딸 때문에 산호세로 이주하여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새가족 환영회로 저희 집을 방문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전에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 재미 있었는데, 새로 듣는 손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 밋밋하여 6개월간을 졸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에 설교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 계속 그렇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곳에 방문교수로 오셨던 어떤 의사 분이 저에게 남기고간 편지에 의하면, 그는 “기독교를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하고,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불교를 근 45년간 믿”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어떤 목자님을 만나 목장을 방문하게 되고, 거기서 따뜻한 섬김을 받으며 마음이 열려서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첫 시간부터 말씀이 들려서, 그의 표현에 의하면 “뭐에 홀린 듯” 주일마다 1부 예배를 드리다가 결국 2016년 1월에 세례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설교를 5년, 10년 이상 듣고도 별 변화가 없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제 아내의 말에 의하면, 설교 시간에 조는 분도 많고,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며 앉아계신 분들도 많으시니까요. 반면에 예배가 끝나고 나오는 시간에 눈에 눈물이 글썽하거나 눈이 벌개져서 쑥스러워하며 나오시는 성도님들도 계십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는데,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나올까요?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 차이는 설교를 듣는 마음 자세에서 나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고 쓰고 있습니다(살전2:13).

설교를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그 설교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말씀이 믿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기(at work) 때문입니다. 말도 느리고 표현력도 시원찮고 어눌한 저의 설교를 들을 때에, 여러분이 저를 바라보지 않고 그런 저를 세우시고 저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면,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여서 여러분을 변화시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기 원하십니까? 오직 하나 설교자가 사람의 말을 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만 한다면, 믿음으로 그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기도시간에도 만나주시고 선교현장에서도 만나주시지만, 그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시간에 가장 흔하게 만나주십니다.

지정헌금은 이런 헌금입니다.

지정헌금은 말 그대로 헌금을 드리는 성도님이 수혜 대상을 직접 지정하여 드리는 헌금입니다. 주보 헌금통계에 있듯이, 우리 교회 지정헌금에는 선교사님이나 선교단체를 위해 드리는 선교 지정헌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돕기 위해 드리는 구제 지정헌금, 그리고 선교나 구제가 아닌 다른 명목으로 지정하여 드리는 일반 지정헌금 등 3 종류가 있습니다.

최근 몇 주 동안 헌금이 많았던 이유는 성도님들이 평소처럼 드린 여러 헌금들 외에, 새빛 맹인 선교회 맹인들이 예배를 드릴 예배당 건축을 위해 드린 헌금, 캄보디아에 미션 스쿨 건축과 선교병원을 위해 드린 헌금, 그리고 인도에 예배당 겸 선교센터 건축을 위해 드린 헌금 등 선교 지정헌금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소득의 십일조나 주정헌금을 드린 후, 주님께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선교헌금, 구제헌금, 감사헌금 등을 드릴 때에 특별히 원하는 수혜 대상이 있으시면, 헌금봉투에 그 대상의 정확한 이름과 계좌를 기록하여 드리시면 됩니다. 가족의 생일, 부모님의 팔순, 자녀들의 결혼 등을 하나님 앞에서 기념하거나 감사하면서 지정헌금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전에 우리 교회는 가족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우리 교회는 한 가족입니다. 하나님을 한분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교회의 식구가 늘어가면서 예전의 친밀했던 가족의 모습이 어느덧 조금씩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교회 식구들이 자녀들의 이름까지 서로 다 잘 알았습니다. 교회 식구 중에 누가 아프면 온 교회가 다 함께 아파했고, 고난주간에 특별기도회로 모이면 거의 전 교인이 함께 모였습니다. 교회 부모님들은 다 내 부모님이셨고, 교회에 자녀들은 다 내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부모님들을 함께 즐겁게 섬겼고, 자녀들을 함께 양육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도 종종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 교회가 자꾸 제도화되고 기업화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교회의 규모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회복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마주칠 때에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오늘 함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모두 내 가족이며,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함께 살아갈 영원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토요일에 광복절 기념 북가주 교회간 친선 배구대회가 있는데, 참석하여 즐겁게 응원도 하고 성도의 교제도 나눕시다. 예전처럼 지원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서 매년 6-7팀이 출전하고, 전교인이 참석하여 응원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산돌 목사

탄나지아에는 ‘하얀 흑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백색증 환자들인데 백색증 환자의 신체를 지니면 부자가 된다는 미신 때문에 팔과 다리를 잃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2만 명중 1명꼴이지만 탄자니아에는 그 비율이 1,400명당 1명꼴로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백색증 환자의 팔 하나는 한국 돈으로 220여만 원, 시신 한 구는 8,300여만 원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백색증이 걸린 어린 탄자니아 아이들은 상당히 위험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끌려가서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구분 짖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을 대할 때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지역과 학교와 취미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 중 하나가 신앙생활의 경험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기존의 신자를 편하게 생각하고 또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교회를 경험한 분들이나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거나 신앙생활을 접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늘 부담스러움을 가지기도 합니다.

민수기 1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땅에 들어가서 드려야 할 모든 규례에 타국인도 동등하게 그 규례를 지켜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민15:14-16, 26, 30)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들에게까지 동일하게 규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고를 칠까봐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 반하는 것들을 조장하거나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 두려웠다면 그들에게만 국한되는 특별법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며(15절)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된다”고(16절)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닌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양이라 칭하고 동일한 보혈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1절을 보면 바리새인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는 “주님 저는 난민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주님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주님 저는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와 동일한 기도가 아닐까요? 하지만 결국 바리새인은 의롭다 칭함을 받지 못합니다.(14절)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만나고 얼굴을 대하는 모든 이들의 영혼을 보기 원합니다. 구분 짖지 말고, 편견을 갖지 말고, 불편해 하지 말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며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묵상하며 삶에서 행함으로 한 영혼을 진실되게 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증거 없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증거가 있어야 믿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도 없이 믿을 수 있느냐”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크리스천들은 증거 없이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며 ‘무식하게’ 믿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실존을 믿을 수 있도록 셀 수 없이 많은 증거들을 주셨습니다.

20세기 최고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인생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삶 밖에 없다. 한 가지는 기적은 없다고 믿는 삶이고, 다른 한 가지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왜 모든 것이 기적일까요? 그것은 우주와 만물이 모두 우리의 능력과 이성을 뛰어넘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라는 찬송 가사가 있지만, 실상은 눈에 보이는 만물이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실존을 선포하는 증거들입니다. 미세한 원자, 분자세계의 초정밀한 균형으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광대한 우주의 질서와 조화에 이르기까지 만물이 하나 하나 모두 창조주가 살아계심을 입증합니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생명을 신비하게 지으시고 유전자 코드(DNA Code)를 설계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실재를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대폭발(Big Bang)을 통해 ‘우연히’(by chance) 생명체가 만들어질 확률은 맹인이 오대양 육대주에 셀 수 없이 많은 모래 중에서 정해진 한 알의 모래를 찾는 것보다 힘들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상 불가능한 것을 숫자로는 가능하다고 부득부득 우기는 고집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창조주를 믿지 않는 것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믿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주인 되어 살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고귀한 자존심이 이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고 무조건 전제하고, 보이는 물질세계가 전부라고 주장하며, 자연과 과학의 사실들을 가지고 오히려 그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공격하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의 날을 정해놓으셨습니다(행17:31). 인류 모두에게 죽음과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히9:27). 그 날에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했다”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이 화가의 실존을 증거하듯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이 그를 증거하기 때문입니다(롬1:20).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의 실존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담겨있고,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증인들의 증언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 죄를 지고 대신 죽은 그의 아들을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죽음과 심판이 닥치기 전에, 이 모든 증거들을 보고 듣고 회개하고, 부활하셔서 지금 여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살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경과보고를 드립니다.

저는 2015년 말에 조기 은퇴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후임이 결정되지 못하였고 또한 당회가 저에게 65세 정년까지 섬기도록 요청하셔서, 결국 5년을 더 섬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새롭게 주어진 5년 동안 제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후임 담임목사님이 하기 힘든 일들을 제가 해놓고 떠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일은 저의 20년 넘는 목회를 인해 저에게 맞추어져 있는 교회를 제가 없어도 운영되도록 조정하는 일이었고, 더 중요한 일은 그 동안 방치 되었던 1세 2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분열의 담과 부서 사이에 벽을 무너뜨리고, 온 교회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저의 편안만 구하며 이 일을 다음 세대에 맡기고 떠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제가 해놓고 떠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일을 후임 담임목사님이 하려면 제가 하는 것보다 몇 배 이상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5년 중 첫 해인 2016년에는 목장으로 1년간 안식년을 갖게 하고 한 해 동안 신구약성경을 통독하면서, 가정교회 목장들을 5개의 지역별 평원으로 편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평원을 담당할 목사님들을 청빙하여, 각 평원에 속한 목장 식구들을 섬기고, 또한 목장에 소속하지 않은 해당 지역 성도님들의 심방, 상담 등 목양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NLCF(영어회중)와 Pneuma(영어대학부)로 구성된 EM을 새롭게 하기 위해, 먼저 NLCF를 맡고 있는 이인국 목사님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9년 동안 이인국 목사님은 담임목사인 저의 간섭 없이 거의 독립적인 목회를 해오셨습니다. 그것을 제가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담임목사인 저를 따라올 것을 요청했습니다. 단절되어 있던 NLCF와 Pneuma를 연합시키고, 나아가 1세와 2세를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인국 목사님의 선택은 나가서 새로운 EM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나가기 원하는 멤버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서 함께 교회를 개척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현재 이인국 목사님은 함께 나간 멤버들과 함께 새 교회를 개척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좋은 교회가 세워지도록 기도해주세요.

이인국 목사님의 방향이 결정된 후, 저는 영어대학부를 섬기는 권유진 전도사님을 만났습니다. 권유진 전도사님의 비전도 나가서 새로운 EM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6월말로 사임하되, 당회의 결정으로 12월말까지 사례를 드리며 6개월간 유급휴가를 드려서, 다음 사역을 준비하도록 도와드렸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남기로 결정한 멤버들과 함께 새로운 EM 목회자를 청빙 중에 있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1세와 2세가 하나 되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선교하는 비전을 가진 목회자를 청빙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져서, 1세와 2세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함께 선교지에 나가서 함께 복음을 전할 날이 속히 오도록 기도해주세요.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변화시켰을까요?

사람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물질문명은 지식과 함께 현기증이 날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인간의 본성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외모도 세월에 따라 변하지만, 고무줄을 늘려도 다시 원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본질적인 모습은 아무리 노력해도 금세 옛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렇지만 지난 주일 목회편지에 쓴 것처럼, 뿌리까지 변화되어 일생을 살다간 한 무리의 사람들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변화시켰을까요?

그들은 옛 직업이 대부분 어부로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3년간 예수님께 배우면서, 물 위를 걸으시고, 오병이어로 5천명 이상을 먹이시고, 눈먼 자를 보게 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기적을 수없이 목격했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 부인했고,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사도행전에 가면 갑자기 돌변합니다. 숨어있던 그들이 두려움 없이 밖으로 나와 담대하게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2:14-39, 4:13). 이제 그들에게는 어떤 협박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4:17-20). 옷이 벗겨지고 살이 찢겨지는 채찍질을 당할 때, 그들은 오히려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습니다(5:40-41). 그들은 감옥에 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5:18, 12:4, 16:22-25) 심지어 죽음조차 영광으로 여기며 모두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로 변했습니다(24:5, 히11:38). 권세를 가진 자들이 아무리 협박을 해도, 몸이 상하도록 채찍질을 해도, 감옥에 집어넣어도, 마지막에는 죽여도, 그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그리고 어떤 후회도 없이 그들의 주님 예수님을 즐겁게 따라갔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변화시켰을까요?

4 복음서의 끝 부분과 사도행전의 앞 부분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우리처럼 겁 많고 평범한 그들을 변화시킨 것은 첫째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과 둘째 보혜사 성령을 받은 것, 이 두 가지 사건입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우리도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증거하기 위해 보내신 성령을 받으면, 우리도 뿌리째 변화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변화된 우리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해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들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기 원하십니까? 변화 없이 그냥 계속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욕망을 추구하며 살다가 죽을 계획이십니까?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납시다. 성령을 부어주시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고난도 달게 받으며 영광의 길을 걸어갑시다. 이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사람이 정말 변할 수 있을까요?

요즘 새벽예배에서는 민수기를 본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민수기를 통해서 우리는 출애굽 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정말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맛보며 애굽(이집트)을 떠나왔지만, 그들은 노예로 살던 애굽을 다시 그리워했고(출16:2-3, 17:3, 민11:4-6, 14:2-4), 여전히 애굽의 죽은 우상숭배 문화에 매여 있었으며(출32:1-6), 시도 때도 없이 원망과 불평을 하는 노예근성에 젖어있었습니다(출15:24, 민11:1, 16:41, 20:2, 21:5).

그들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10 가지 재앙을 직접 목도하였고, 홍해를 걸어서 건넜으며, 반석에서 솟아난 샘물을 마셨고, 이슬과 함께 내린 만나를 먹으며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놀라움과 답답한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들을 친히 인도하시던 하나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는 그들 출애굽 1 세대(generation)를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게 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민14:26-32). 그리고 출애굽 당시 20세 미만이었거나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 세대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함께 출애굽 2 세대가 죽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슬프게도 하나님을 거역하던 옛 세대로 다시 돌아갑니다(수2:8-10).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였고, 인류의 역사였으며,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정말 변하지 않습니다.

올해는 마틴 루터가 1517년10월31일 비텐베르크 예배당 정문에 95개 반박문을 걸어서, 종교화되고 세속화된 교회에 개혁의 불길을 일으킨지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500년이 지난 오늘날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다시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시 부패했던 옛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야 할까요?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한 가지 소망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소망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변화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바로 사도행전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의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죽음도 막을 수 없는 영구적이고 근본적인 변화였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변화시켰을까요?

단기선교에 참여합시다.

지난 주일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과 자녀들의 숫자가 갑자기 평소보다 2백명 이상 줄었습니다. 아이들의 방학이 이제 시작되었고 여름 휴가와 여행, 한국 방문의 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형편상 못 떠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아이들의 등살에 못 이겨서 할 수 없이 여행을 떠난 가정도 있으실 것입니다. 여름 석 달, 아이들과 싸울 생각에 골치가 아파서 아예 아이들을 한 두 달 한국에 친정 부모님께 보낸 엄마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단기선교 파송을 앞당겨서, 올해 첫 단기선교팀 11명이 벌써 도미니카에 갔다가 사역을 마치고 어제 귀국했으며, 두 번째 팀 22명이 뉴멕시코로 지난 금요일에 출발했습니다. 이 선교팀들은 아이들의 방학에 맞추어 계획 되었고, 또한 멀지 않은 선교지이기 때문에, 1세와 2세가 함께 떠나는 선교여행이었습니다. 2018년 내년에는 더 많은 가정들이 자녀들과 함께 여름방학 동안에 단기선교에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올 하반기에도 6개의 단기선교팀이 인도네시아, 중국, 아이티, 멕시코, 애리조나 나바호, 인도 등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그런데 일부 팀에 참여자들이 더 필요해서, 선교위원회가 추가 모집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선교지들은 과거에 한번 이상 다녀왔지만, 특별히 아이티는 우리 교회가 처음으로 단기선교팀을 파송하는 곳이어서 소개를 드립니다.

아이티는 플로리다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캐리비안 해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일약 유명해진 것은 2010년 대지진 때문입니다. 이 지진으로 22만 명 이상이 죽었고 30만 명이 부상을 당하고 당시 인구의 1/3인 300만 명이 재난을 당했다고 합니다.

지진의 피해가 너무 커서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이 도움을 주었지만, 워낙 부정부패가 심하여 7년이 지난 지금도 지진의 피해는 거의 복구되지 않았고, 빈부의 차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극에 달해있으며, 빈민가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참혹하기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 믿음의 가족인 정광 집사님에게 지진 후 뜨거운 마음을 주셔서 바로 아이티를 방문하게 하셨고, 지난 7년간 매년 몇 개월씩 아이티에 머물며, 김승돈 선교사님과 함께 아이티 수도 인근 빈민지역에 선교센타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이 선교센타와 함께 사역할 제2 선교센타를 ‘모이’라는 지역에 세우기 위해 대지 구입을 마친 상태입니다.

우리 교회 선교팀이 10월 중에 파송되어 아이티 땅을 밟을 예정입니다. 주사역은 제2 선교센타 건축, 고아원 사역, 그리고 현지 찬양팀과 함께 전도집회를 열어 수백명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입니다. 여러분이 항공료만 헌금하시면, 남은 선교비용은 교회에서 부담합니다. 오늘 본당 로비에 마련된 데스크에 오셔서 문의하세요. 기도하신 후 용기를 내어 참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계속 배우며 자라갑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벧후3:18). 우리의 신체적인 키는 20세쯤에 성장을 멈추지만, 신앙과 인격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신령한 젖’을 먹으며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벧전2:2, 골1:10, 2:19). 여러분은 신앙과 인격적으로 계속 자라고 계신가요?

저의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저는 젖도 늦게 뗐고, 말도 늦게 배웠고, 남들은 중고등학생 때 다들 통과하는 사춘기를 저는 대학에 가셔야 겨우 겪었습니다. 매사에 늦되었던 저는 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목회도 설교도 인격도 신앙도 모두 덜 익은 풋과일처럼 너무 미성숙하고 부족하고 못된 목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시작은 느렸지만 계속 배우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러 성도님들을 통하여 많이 배우게 하셨습니다. 저는 목사인데도 잘 못하는데, 평신도들임에도 불구하고 저보다 훨씬 더 순수한 사랑으로 아름답게 섬기는 모습들을 보며 배웠습니다. 감사하는 성도님들에게서는 감사를 배웠고, 감사할 줄 모르는 성도님들을 통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웠습니다.

목회자요 설교자로서 저는 또한 많은 목사님들과 여러 교회들로부터 배웠습니다. 저에게 특별히 잊지 못할 큰 배움을 준 교회들은 1998년에 휴스톤 서울침례교회(최영기 목사님), 2014년 춘천 한마음교회(김성로 목사님), 2016년 연세중앙교회(윤석전 목사님) 등 3 교회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교회가 완벽하지 못한 것처럼, 이 3 교회도 모두 지나친 점들도 있고 모자란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교회들의 부족한 점들을 거론하며 그냥 지나쳐버리지만, 저는 이 교회들의 결점에 주목하기보다는 이 교회들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배우는 것에 마음을 두어왔습니다.

모두 침례교회인 이 3 교회의 공통점은 첫째, 기도를 뜨겁게 하는 교회들이었고, 둘째 영혼구원의 열정이 불탔고, 셋째 주님의 몸된 교회를 향한 성도들의 충성심이 엄청났고, 넷째 목장, 작은 교회, 구역으로 각각 이름들은 달랐지만 모두 살아 움직이는 소그룹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죽은 교회들로 가득한 이 시대에 살아있는 교회를 뜻밖에 보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몇 주에 걸쳐 춘천 한마음교회와 김성로 목사님을 통해 배워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부활의 증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려 합니다. 이 설교들을 통해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러분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교리와 이론을 넘어 실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구원의 참 생명과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놀랍게 맛보며, 자라가시기 바랍니다. 또한 세상을 향해서는 부활하셔서 지금 여기 살아계신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공동의회에 참여합시다.


공동의회에 참여합시다.

다음 주일 3부 예배 후 공동의회에서 신임 장로, 권사, 안수집사를 선출합니다. 그 동안 기도해온 대로, 우리 모두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투표하여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공동의회는 교회 규약대로 본교회에 등록한지 만 1개월 이상 되신 세례교인들만 정회원으로 참가할 수 있습니다. 회의는 오후 1:30에 예배로 시작되며, 1:10부터 입장이 허락될 것입니다. 들어오면서 회원명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아 서명을 하고 투표지를 받은 후 들어오십시오.

첫 투표는 장로 후보 8명 중 4명을 최종후보로 선택하는 추천투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장로 후보 8명 중 4명씩 추천하여서, 다득표순으로 4명이 장로 최종후보가 됩니다.

그 다음에는 장로 최종후보 4명, 협동권사 1명과 권사 후보 13명, 협동안수집사 6명과 안수집사 후보 19명을 한 번에 모두 투표합니다. 투표가 끝나면, 바로 현장에서 개표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출석회원 2/3 이상 찬성을 얻은 모든 후보가 피택됩니다.

본교회의 등록된 세례교인들은 모두 투표에 참석하여서 정회원의 의무를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공동의회를 통하여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고, 선출되는 신임 직분자들을 통해 교회에 사랑과 기쁨이 더욱 넘치게 되고, 또한 투표결과로 시험에 빠지는 분들이 없기를 기도드립니다.

가족을 사랑한다면, 가정행복 세미나에 참여합시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부흥집회에 성도 여러분을 모두 초청합니다. 누가복음 14:15-24에 보면, 밭과 소를 사거나 결혼을 하였다는 이유로 각각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절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한 사람도 하나님의 잔치를 맛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베푸시고 초청하시는 말씀 잔치에 참여해서 말씀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기쁨을 맛봅시다.

강사 김성묵 장로님이 본부장으로 섬기는 두란노 아버지 학교는 교회에서 시작되었지만 학교, 감옥, 회사, 군대로 퍼져나가 복음으로 아버지들을 살려내고 가정들을 회복시키고 있으며, 해외 66개국 273개 도시로 확산되어, 총 32만9천명의 수료자를 배출한 세계적인 부흥운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김성묵 장로님을 이 운동의 산증인이자 핵심 강사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번 부흥회에는 메마른 이론이나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삶과 신앙과 체험의 그릇에 담겨진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선포될 것입니다. 기대를 가지고 모두 참여하셔서 여러분의 삶과 영혼을 만지시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진실히 기도하고 참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금요 심야기도회에 참여합시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무리들을 내쫓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우리 교회는 지난 5월1일부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집이 기도의 집이 되도록 본당을 24시간 열고 있습니다.

이제 성도님들의 기도가 점점 길어지고 있으며, 낮에도 그리고 밤에도 오셔서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계십니다. 앞으로 더 많은 성도님들이 영적 목마름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와 기도하면서, 교회에 더 큰 기도의 불길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기도의 집에서 선교와 VIP들과 우리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영적 싸움을 싸울 것입니다.

목장이 자율사역기간에 들어가면서, 이번 주간부터 여름 동안 신앙위원회 주관으로 한 달에 한번 심야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이번 금요일에 첫 심야기도회를 갖습니다. 밤 8시부터 10:30까지 모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열심히 사랑하며 삽시다.

말기 암으로 투병하던 믿음의 가족 박민경 부목자님이 어제 새벽 예배 찬송을 드리는 시간에 49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박민경 부목자님은 어린 3 딸의 마음에 예수님을 심어주는 엄마였고, 목장 식구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고, 믿지 않는 이웃에게 예수님을 증거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고통 중에도 마지막 시간까지 예수님을 믿는 소중한 믿음을 고백하며 주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24시간 사랑하는 아내 곁을 지키며 돌보아온 우민 목자님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고, 엄마를 너무 일찍 천국에 보낸 어린 3딸을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시고, 급히 언니를 간호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동생과 가족을 하나님께서 풍성한 위로로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박민경 부목자님이 투병하는 동안 쉬지 않고 기도해주셨던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지난 3-4년 동안 이 가정을 돕기 위해 식사 준비, 집안 청소를 해주시고, 어린 3 딸을 돌보아주시고 아이들의 학교 교통편 등 온갖 일들을 해주셨던 모든 권사님들, 부목자님들, 성도님들께 온 마음 다해 감사를 드립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성껏 이 가정을 섬겨주신 여러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서, 박민경 부목자님이 남편과 3딸을 주님 손에 맡기고 평안히 하늘나라에 갈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 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나그네로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영원한 본향, 천국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씩씩하게 살아갑시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동행해주실 것입니다.

목장 자율사역기간

이번 주간 모임을 마지막으로 목장이 올 상반기 정기모임을 끝내고 8월말까지 3개월 동안 긴 자율사역기간에 들어갑니다. 지난 4개월 동안 하나님의 양떼를 맡아 섬겨주신 모든 목자/부목자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성실히 목장에 참여하면서 신앙과 삶을 나누고, 올해 표어대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신 모든 목장 식구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자율사역기간은 말 그대로 정해진 규칙 없이 목장이 자율적으로 모이고, 자유롭게 영혼 구원을 위해 섬기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은 목장진행안을 준비해드리지 않습니다. 종종 기도회로 모이십시오. 때로는 바베큐 잔치를 베풀고 그 동안 기도해왔던 VIP들을 초청하여 함께 음식을 나누십시오. 때로는 방학을 한 아이들과 함께 모든 목장식구들이 가까운 공원으로 피크닉을 가거나 혹은 캠핑을 떠나십시오.

한 두 차례는 초원이나 평원에 속한 모든 목장들이 연합으로 모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떤 목장들은 자녀들과 함께 그 동안 후원해왔던 선교사님을 방문하고 선교에 동참하는 단기선교를 떠나기도 할 것입니다. 비록 정기적인 목장 모임은 모이지 않아도 오히려 비정기적인 여러 모임들을 통해 목장의 기도와 사랑이 더 풍성해지는 올 여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잃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기쁨이 열매 맺어지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