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30분에도 기꺼이 달려가는 마음으로
박성호 목사
지난 수요일에는 예배를 드리던 중에 갑작스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북부평원에 속한 목원 가정에 4살 된 하준이라는 아이가 어찌 하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다쳤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뇌출혈이 발견되어 지금 당장 뇌수술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당황하고 있을 부모님을 떠올리며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아빠는 출장으로 동부에 가셔서 급히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셨고 엄마는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한 상황이셨습니다. 밤10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인데 수술대에 오르는 하준이 소식을 듣고 교회 식구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해주시고 기다리신 목자님 부부, 목원들, 교회에서 친한 친구 집사님들, 하준이 주일학교 선생님들, 큐티모임을 지도하시는 권사님 부부, 유년부 선생님, 유치부 전도사님 부부 등, 이래저래 12명 남짓한 교인들이 좁은 대기실에 모여 긴장되는 시간을 기도하면서 또 대화하면서 함께 보냈습니다. 2시간이 지난 후 수술이 매우 잘되었다는 간호사의 전갈에 모두가 얼마나 마음을 다해 기뻐했는지요! 병원에서 나오면서 제 안에 뭉클한 감정이 솟아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늦은 밤에도 내 일처럼 한걸음에 득달같이 달려오는 우리 교인들의 사랑이 그 밤에 저에게도 전달된 것입니다. 병원 시큐리티의 질문처럼 모두가 “직계가족”이라도 된 심정으로 모두는 달려왔던 것입니다.
목회 초년기에 몇 번에 걸쳐 설교를 통해 토니 캄폴로 목사님의 예화를 든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시면 보실 수 있겠지만 요지는 이렇습니다. 목사님이 하와이 집회에 갔다가 시차적응이 안되어 24시간 여는 식당에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옆자리에 누가 보아도 유흥업소에 일하는 아가씨들이 와서 앉게 되었는데 그중에 아그네스라는 아가씨가 내일이 자기 생일이라 말했던 것입니다. 주인에게 알아보니 이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식당을 들리는 단골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3시30분에는 목사님의 제안으로 식당 모든 직원들이 아그네스를 위해 케이크를 자르며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아름다운 에피소드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나중에 주인은 묻습니다. “아니 당신이 목사라는 것을 왜 알리지 않았소? 어느 교회 목사님이신가요?” 대답합니다. “네 저는 ‘새벽 3시30분에 유흥업소의 아가씨들에게 생일파티를 해주는 교회’의 목사입니다.” 주인이 다시 대답합니다. “그런 교회는 없어요...”
우리도 ‘새벽 3시30분에 유흥업소의 아가씨들에게 생일파티를 해주는 교회’가 되자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철없이 많이도 외쳤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교회가 되고 그런 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크나큰 희생과 섬김을 요구하는 일인지 잘 모르고 하는 당시에는 공허한 구호였습니다. 현실에 좌절하고 순수함을 조금씩 잃어버리며 더 이상 그런 예화는 들지 않았던 저의 과거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 칼럼을 쓰는 오늘 저는 다시 한 번 꿈을 꾸어 봅니다. 그런 교회의 목사가 되고 싶다고. 그런 교인으로 살고 싶다고. 힘드시겠지만 그런 교회가 이 땅에 한번 세워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모두에게 깊이 새겨지시는 한 주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