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유혹

창조 이후 인간이 만든 정치제도들 중에 가장 뛰어난 제도는 ‘민주주의’라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 독재국가인 북한조차도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공식 국가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민주주의’를 선호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해주세요(2).

저는 지난 주일 5월 정기당회에 박성호 목사님과 문다윗 목사님 두 분을 공동 담임목사 후보로 올리되, 박성호 목사님은 한어권(KM)을 주사역으로 하고 문다윗 목사님은 영어권(EM)을 주사역으로 하는 공동 담임목사 후보로 올렸는데, 공동 담임목사 안에 대한 투표가 당회에서 부결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순종

문다윗 목사

먹구름으로 하늘이 덮인 날이었습니다. 비행훈련을 마치고 소형 비행기를 착륙하려던 한 조종사가 거센 비바람 속에서 비행 궤도를 설정하지 못한 채, 하늘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길을 찾으려 아래를 살펴보아도, 눈앞을 가리는 구름 때문에 도무지 착륙을 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참된 회개의 방법

문다윗 목사

어스틴 텍사스 주립대에서 대학교 3학년을 보내던 때였습니다. 당시, 기쁨과 능력 없이 죄와 싸우며 힘겨워하는 자신의 신앙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 부모님 밑에서 자라고, 10년 넘게 크리스천으로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발전이 없는 저의 모습을 보며 좌절했습니다.

은혜 중에 마쳤습니다.

지난 주에 열렸던 선교대회가 하나님의 은혜 중에 끝났습니다. 과거에 북가주 선교대회가 우리 교회에서 두 번 주최된 적이 있는데 당시에 강사로 오셨던 OM 선교회 설립자 조지 버워, 허드슨 테일러 3세,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복음학교” 김용의, “족자비안나이트” 저자 손창남 선교사님 등과 비교하면, 이번에 오신 선교사님들은 지명도에 있어서 대부분 평범한 분들이셨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가깝게는 베이지역과 LA에서, 멀리서는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에서 기쁘게 달려오셔서 귀한 말씀과 강의를 전해주신 모든 선교사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1년 전부터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선교위원회와 서부 평원에도 큰 감사를 드립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갑시다.

제가 1992년 봄에 부임했을 때, 우리 교회는 세 교회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1994년 봄까지 우리 교회는 다시 한 교회로 연합되었고, 1996년에 들어서면서 우리 교회는 안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저희 가정은 계속 목회를 할 것인지 아니면 학교로 돌아갈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2 대 2로 나누어졌었습니다.

후임 담임목사 청빙 경과보고를 드립니다.

성도님들께 먼저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저의 부족함을 인하여 지난 주일에 있었던 당회에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였습니다. 저의 기도가 부족하였고 또한 제 리더십과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고, 또한 40일 릴레이 금식 기도까지 하시며 기다리신 성도 여러분께 너무 죄송합니다.

우리 교회는 참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른 형제 교회들과 같이 우리 교회도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행20:28). 우리에게는 선한 것도 없고 아름다운 것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셔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시고(벧전2:9) 그의 아들의 형상을 닮으며 자라가도록 우리를 계속 빚어주고 계십니다(롬8:29).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주세요.

혹독한 겨울 추위가 없어서 눈도 오지 않고 얼음도 얼지 않는 산호세에서는 느낄 수 없지만, 어린 시절 봄의 추억은 지금도 따뜻하게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겨울 찬바람에 대지도 꽁꽁 얼고 몸과 마음도 꽁꽁 얼어붙습니다. 바깥에서 찬 물에 대충 세수 하고 방에 뛰어 들어가려면 쇠 문고리에 손가락이 쩍 달라붙습니다.

무신론자들의 고통

어떤 무신론자가 어느 날 크고 수치스러운 죄를 범한 후 너무 괴로워서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고 싶은데, 그의 죄를 고백할 대상이 없어서 슬퍼했다는 이야기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의 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창조주 하나님을 스스로 거부한 사람들의 고통입니다. 욕망에 매여 죄 가운데 살아가는 작은 피조물에 불과한 그들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까지 스스로 책임지며 홀로 살아야 하는 고통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