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를 향한 예수님의 긍휼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 주님의 긍휼은 관심있게 보는 것이다.
* 주님은 여인을 보셨다. 평소에 고아와 과부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에, 지금도 과부를 보면서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다.
* 주님은 상여를 보셨다 과부의 구체적인 문제와 눈물의 원인을 꿰뚫어 보셨다. 깊게 보려면 상당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볼 수 있다.
* 주님은 공생애 내내 불쌍한 자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예) 오병이어 사건(마 15:32), 여리고 성의 두 맹인(마 20:34), 나사로(요 11:33, 35)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몸속의 장기들이 움직였다"는 뜻이다.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깊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 붓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내 심장이 찢어지도록 아프다는 것이다.
2. 예수님의 긍휼은 보상을 기대치 않는 것이다.
*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는 그 당시 사회적 약자들의 대명사였다. 과부는 끝없이 쏟아 부어 주어야 하고, 돌아오는 것은 전혀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우리도 보상이나 자격을 생각치 않고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내가 상대를 불쌍히 여기고, 보상을 바라지 않고 희생하고섬겨 주면, 어떻게 될까요? 받을 자격이 없어도 베풀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내가 행복하게 됩니다. 긍휼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는 것이다. 긍휼은 내게 돌아올 이득을 생각치 않고, 보상을 생각치 않고베푸는 것이다.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3. 예수님의 긍휼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 관에 손을 댔다는 것은 죽은자와 접촉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죽은 자와 접촉하면 부정해진다.(민 19:11, 16)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을 긍휼히 여기셨고, 생명을 살리기위해서라면, 부정이라도 감수하셨다. 나는 누구를 위해 불편과 손해를 감수한 적이 있는가?
* 예수님은 여인을 단순히 불쌍하게만 여긴 것이 아니라, 그 눈물의 원인인 상여에 손을 대어주셨다.
(숙제)이번 달에 내가 긍휼히 여길 사람은 (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