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0-40)-박성호 담임목사

마음의 문을 열며:

* 한국인에게 ‘덕’이라는 단어는 매우 익숙한 표현이며 우리의 심성과 사고에 깊게 배여 있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덕’의 개념은 조금 다릅니다. 개인의 인격 수양이 아니라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집처럼 세워지는 데에 의의를 둡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로 넘쳐났던 고린도교회는 의외로 성숙하지 못한 교회였습니다. 은사의 유무와 성숙의 여부는 비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v.26)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우리는 성숙한 분별을 통해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v.20-25)

 

2. 우리는 혼돈이 아닌 화평 속에서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v.26-33)

3. 우리는 질서품위 가운데에서 교회를 세워가야 합니다(v.33-40)

삶의 열매를 거두며:

* 내게 주신 성령의 은사는 무엇인가요? 만일 방언의 은사를 받은 분이 계시면 말씀의 교훈을 따라 그 은사를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까?

*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발휘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더 마음에 품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고 자신의 결심을 노트에 기록해 봅시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그는 진리의 영이라 (요14:16-21) - 박성호 담임목사

마음의 문을 열며:

*그리운 이들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은 그 사무치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잘 압니다. ‘살아 있을 때 더 잘 할 걸 그랬다’는 후회와 아쉬움을 우리는 종종 표현합니다. 본문이 속한 말씀은 요한복음 13-17장까지 이어지는 예수님의 ‘고별강화’(Farewell Discourse)중의 한 부분입니다. 제자들과의 이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예수님의 절박한 심정을 독자들은 말씀에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떠남에 이어 누군가 새로 오실 거라는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16:7)고 까지 말씀하십니다. 왜 주님이 떠나시고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유익일까요? 성령님이 신자들에게 찾아 오신다는 약속은 어떤 점에서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것일까요?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함께 붙들어 보겠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오실 그 분은 “또 다른 보혜사”(another Helper)이시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도 보혜사이시고 성령님도 보혜사이시기에 우리는 안심하고 맞이할 수 있습니다.

 

2. 오실 그 분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려주실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 예수님이 곧 길이십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진리이며 생명입니다. (cf.요16:13)

3. 오실 그 분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거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구약 시대의 성령은 임했다 떠나시기도 하였지만 신약시대의 성령님은 영원히 신자들 가운데 거하시며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엡1:13-14; 4:30; 고후1:21-22; 마28:18-20).

삶의 열매를 거두며:

* 신앙 생활하면서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자주 있으셨나요? 오늘 성령님에 대하여 묵상할 때 내게 주신 위로의 메시지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깊게 생각하고 기록해 봅시다.

서로 같이 돌보는 교회

서로 같이 돌보는 교회 (고전 12:22-27) - 김정기 목사

교회는 서로 같이 돌봄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불립니다. (고전12:27)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메시지는 장애인 주일을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에게도 시선의 방향 전환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1. 우리의 시선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편한 기준으로 나누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바울은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고전 12:22)라고 말하며, 문제는 사람의 상태가 아니라 우리의 시선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익숙한 기준을 다시 보게 하십니다.

  • 나는 누구를 중심에 두고, 누구를 주변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 나는 사람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편함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2.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한 몸입니다

교회는 돕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 없이는 온전할 수 없는 몸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지체에게 더 큰 귀함을 더하시며 서로 돌보게 하셨습니다(고전 12:24­-25).

  • 나는 누군가를 ‘돕는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 이 공동체 안에서 나는 누구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또 누가 나를 필요로 하는가?

3. 돌봄 속에서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는 조건이 아니라 돌봄으로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한 지체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고전 12:26-­27).

  • 나의 삶은 누군가에게 쉼이 되는 둥지와 같은가?

  • 나는 지금 누구를 돌보고 있으며,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부활을 소망하는 이의 현재와 미래



부활을 소망하는 이의 현재와 미래 (빌3:10-21) - 박성호 담임목사

마음의 문을 열며:

* 부활주일을 보낸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표현이지만 이 말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주는 도전은 무엇일까요? 부활의 영광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의 삶과 미래의 삶에는 어떠한 자세와 소망이 담겨 있어야 할까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며 그러한 마음 자세를 붙드는 하나님의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거룩한 불만족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현재가 되어야 합니다.

*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2. 하늘나라의 시민임을 기억하며 고난 중에도 기다리는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현세에서 획득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최종적인 목적지를 늘 바라보며 기다려야 합니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 본 회퍼 목사님이 쓰신 ‘선한 능력으로’ 라는 시의 내용을 묵상해 보십시오. 오늘 나에게 주신 위로와 소망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만약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마음을 한번 묵상해 봅시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부활이 있기 때문에 (고전15:50-58) - 박성호 담임목사

마음의 문을 열며:

* 인간의 노화를 방지하고 나아가서 불멸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들이 진행중입니다. 생명이 있을 동안에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과제이지만 한 편으로는 선을 넘어서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피하고 싶은 주제인 죽음의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인간으로서 맞이하는 필연적인 죽음의 문제를 성경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더 큰 소망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약속하시고 보여 주신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2026년 부활주일에 우리가 말씀 앞에서 분명히 가져야 할 소망을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본문이 선포하는 교훈을 붙잡고 일상의 삶을 온전히 감당해 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원합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생명의 길이 보다 중요한 생명의 깊이를 가진 몸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50-53절)

* 우리의 존재가 연속성을 가진 채 영광스러운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 이전의 성도들과 사랑하는 가족도 서로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마17:1-4; 눅16:22-24)

* 신자들의 변화된 몸이 어떤 상태일지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힌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가늠할 수 있습니다(눅24장, 요 20장)

 

2. 영원한 난제인 사망의 문제가 완전한 승리로 끝나게 되기 때문입니다(54-58절)

* 한계가 있었던 인간의 육신적인 사랑의 관계도 죄와 허물이 없는 완전함 속에 사랑하는 존재로 변화되게 됩니다(고전13:11-13).

 

삶의 열매를 거두며:

*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의 목적은 정보 처리 능력에 있지 않고 관계를 맺고, 서로 사랑하며 책임을 지는 실존에 있습니다. 우리의 몸(soma)은 단순한 껍데기(sarks)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해 가는 거주지이며 부활하게 되면서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주에 내가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써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겠습니까(58절)?  

회복과 거룩의 확장


회복과 거룩의 확장(슥 14:16-21) - 이산돌 목사

D-DAY (아들을 보내신 이유와 구원의 길을 여시는 그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하나님의 의지로 이루어졌으며 그 의지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오늘 스가랴의 말씀 속에 그날이 나옵니다. D-DAY

그날에 대해서 (스가랴 12:3,8,11; 13:1,4; 14:1,4,6,13,20,21)

1)      그날에 성전의 회복이 곧 열방의 회복으로 확장될 것입니다.(16-19절)

초막절에 대해서 (출23:16, 신16:13-15, 레23:39-43, 느8:14-17)

2)      그날에 거룩의 영역이 확장될 것입니다. (20-21)

여호와의 성결에 대해서 (출28:36, 렘31:38, 행10:12-15)

 

구약의 그 말씀이 그 날에 그리스도로 인해 성취되었습니다. (사11:10-11)

1)      그날로 인해 진정한 성전이 회복되고 온 열방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마 27:51, 요3:17, 히10:19-20)

2)      그날로 인해 온 열방에 하나님의 거룩의 영이 주어졌습니다. (고전3:16, 엡 2:20-22)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받은 그날부터 우리는

1)      우리의 회복으로 주변이 회복되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이 회복되어야 하는데 무엇이 회복되어야 할까요?

(                                  ) 회복, (                      ) 회복, (                         ) 회복

2)      우리의 삶의 터전에 거룩의 영역을 확장하도록 주변의 사람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숙제 및 적용

1)      고난주간 특별새볘예배와 성금요예배를 드리기

2)      주님을 향한 감사와 그로인한 겸손의 표현을 주변사람들에게 고백하기

예수님께 좋은 일



예수님께 좋은 일(마 26:1-16) - 박성호 담임목사

마음의 문을 열며:

*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주간에 있었던 사건으로 성경에 세번 언급이 됩니다(막 14:3-9; 요 12:1-8).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마리아라는 여인이 갑작스럽게 벌인 일종의 해프닝이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이 넘는 값비싼 향유를 일거에 쏟아 버렸으니 제자들의 반응은 어쩌면 상식적인 반응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의 행동은 예수님에게서 비난이 아니라 칭찬을 받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어떤 이유로 여인의 행위를 칭찬하신 걸까요? 시간 대비 효율, 투자 대비 수익을 따지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깨닫고 다가오는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마음으로 준비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참된 예배자는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고 드리는 사람입니다

* 여인이 드린 헌신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기억하며 드린 최고의 예배였습니다.

* 예배(worship)는 참된 가치(worth)를 온전한 대상에게 인정해 드리는(ship) 우리의 행위입니다.

 

2. 참된 예배자는 주님을 자신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두고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 제자들의 관심은 돈에 있었지만(요 12:4-6) 여인의 관심은 예수님 한 분께만 있었습니다.

* 참된 헌신은 복음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결과입니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 신앙 생활을 하는 중에 8절에 나타난 제자들의 고백처럼 ‘왜 이렇게 쓸데 없는 일을 하나’라는 질문이 든 적은 없으셨나요? 오늘 말씀에서 자신의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된 부분이 혹 있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 30일에 시작되는 고난주간 특새에 참여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리며 내 안에 감격과 열정이 다시 타오르게 해달라고 부르짖을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십시다.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막 13:28-37) - 박성호 담임목사

마음의 문을 열며:

* 전쟁과 환란의 소식이 많이 들려올 수록 그리스도인들은 인류의 종말에 대해 걱정하며  주님이 말씀하신 마지막 때가 지금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해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시대가 어려울 때 마다 수많은 이들이 예언과 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는 일은  계속되어 왔습니다(22절).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2천년 동안 지연되어 오고 있습니다.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날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의 말씀을 떠올리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항상 깨어 있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오늘의 진리는 무엇일까요? 함께 말씀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주님의 재림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v.28-31)

* 역사를 통해 배우는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v.14-23).

* 세상의 사건을 신앙의 눈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2. 그러나 재림의 날짜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긴장감이란 사실입니다(v.32-37)

*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말은 영적인 긴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성도의 가장 큰 특징은 기도하고 사랑하는 삶입니다(막14:37-38; 벧전 4:7-8).

* 주인의 부재 중에도 부르심을 기억하며 항상 성실하게 일상의 삶을 감당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 인류의 문명이 점점 발달할 수록 우리의 미래가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번 주 목장에서 나눌 수 있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봅시다.

 

* 무분별한 종말론에 빠진 기독교인들의 모습들은 세상이 흉흉해 질 수록 눈에 더 자주 띱니다. 이런 이들에게 오늘 말씀을 근거로 해줄 수 있는 나의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주인에게 충성하십시오



주인에게 충성하십시오(눅 16:10-16) - 박성호 담임목사

마음의 문을 열며:

누가복음 16장은 주인의 살림을 대신하던 한 청지기가 자신이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미래에 찾아올 고난에 대비해서 빚 졌던 사람들의 채무를 깎아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해석하기가 참 어렵게도 예수님의 그의 행동을 칭찬하시는 것처럼 보여서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는 가장 어려운 비유라는 말을 듣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야기의 후속 조치로 주님이 말씀하신 일종의 해설입니다. 주님의 말씀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함께 기도로 나아갈 제목을 찾아보기 원합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청지기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v.12)

* 진짜와 가짜 청지기를 구분하는 질문은 간단합니다. ‘누가 주인인가’를 확인하면 됩니다.

 

2. 사람 앞에서 자신이 더 의롭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v.15)

*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두가지(자기 의와 사람 중에 높임 받는 삶)를 늘 경계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청지기가 살아가는 삶의 중심은 복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v.16)

* 우리에게 ‘침입’하는 삶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신속한 결단을 요구합니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다 내려놓고, 더 이상 미루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해고되기 전에 빨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하십시오.

 

삶의 열매를 거두며:

1.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들여다 봅시다. 나는 하나님 보실 때 ‘청지기’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 스스로에게 한번 답변해 보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경험한 사람은 그리로 ‘침입’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복음 앞에서 내가 내려놓아야 할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것(히12:1)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다음 주일에는 좀 더 가벼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잃어버린 두 아들의 비유



잃어버린 두 아들의 비유(눅 15:25-32) - 박성호 담임목사

마음의 문을 열며:

*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알려진 오늘의 유명한 본문에서 일반적인 청중들은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둘째 아들을 따스하게 맞이하는 아버지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팀 켈러의 책 제목처럼 이 아버지는 ‘탕부 하나님’(Prodigal God)이십니다. 오늘은 쉽게 간과하고 지나갈 때가 있는 맏아들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해 봅시다. 그는 한번도 아버지 곁을 떠난 적이 없었지만 그 역시 아버지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아들이었습니다. 맏아들을 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진리를 마음에 새기며 한 주간의 기도의 제목을 붙잡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집안에 머물고 있지만 그 역시 잃어버린 아들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하나는 못됐고 하나는 착하지만 아버지와 멀어져 있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둘 다 아버지의 권위에 대해 반항했던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2. 동생처럼 형도 잘못되었지만 그 역시 사랑 받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죄란 단순히 규범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재판장이신 하나님 자리에 자기 자신이 올라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의 모든 큰 형들은 집에 머물고 있지만 여전히 잃어버려진 바 되었음을 인식하고 아버지와 함께 ‘잔치집에 들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