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돌 목사
탄나지아에는 ‘하얀 흑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백색증 환자들인데 백색증 환자의 신체를 지니면 부자가 된다는 미신 때문에 팔과 다리를 잃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2만 명중 1명꼴이지만 탄자니아에는 그 비율이 1,400명당 1명꼴로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백색증 환자의 팔 하나는 한국 돈으로 220여만 원, 시신 한 구는 8,300여만 원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백색증이 걸린 어린 탄자니아 아이들은 상당히 위험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끌려가서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구분 짖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을 대할 때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지역과 학교와 취미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 중 하나가 신앙생활의 경험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기존의 신자를 편하게 생각하고 또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교회를 경험한 분들이나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거나 신앙생활을 접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늘 부담스러움을 가지기도 합니다.
민수기 1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땅에 들어가서 드려야 할 모든 규례에 타국인도 동등하게 그 규례를 지켜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민15:14-16, 26, 30)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들에게까지 동일하게 규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고를 칠까봐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 반하는 것들을 조장하거나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 두려웠다면 그들에게만 국한되는 특별법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며(15절)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된다”고(16절)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닌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양이라 칭하고 동일한 보혈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1절을 보면 바리새인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는 “주님 저는 난민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주님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주님 저는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와 동일한 기도가 아닐까요? 하지만 결국 바리새인은 의롭다 칭함을 받지 못합니다.(14절)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만나고 얼굴을 대하는 모든 이들의 영혼을 보기 원합니다. 구분 짖지 말고, 편견을 갖지 말고, 불편해 하지 말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며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묵상하며 삶에서 행함으로 한 영혼을 진실되게 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