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떤 조사에 의하면, 올해 미국인들이 가장 짜증나는 말로 ‘whatever’을 뽑았으며, 이 단어는 9년 연속 1위라고 합니다. 양손과 함께 어깨를 치켜들며 사용하는 이 말은 “맘대로 하세요. 당신이 뭘 하시던 난 상관 없습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몹시 듣기 싫어하면서도, 사람들은 이 말을 왜 계속 사용할까요?
보도에 의하면, 며칠 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의 팝 가수 ‘샤이니’의 멤버 ‘종현’이 자살을 하였습니다. 뛰어난 가창 능력에 작곡 실력까지 겸비한 실력파 가수로, 엄청난 인기에, 남들이 선망하는 고가의 외제차도 가지고 있는 27살의 청년이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을까요?
유서에 “난 오롯이 혼자였다”고 쓴 것을 보면, 화려한 무대와 열광하는 팬들에 둘러싸여 살았지만, 실상 그는 외롭게 혼자 살다가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었지만, 실은 아무도 그의 곁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바로 현대 사회를 한 마디로 단정 지을 수 있는 단어인 ‘whatever’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수다를 떨고 음식을 같이 먹지만, 속마음은 항상 ‘whatever’를 외치며 외롭게 단절되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중 속에 고독”이라는 말처럼, 현대인들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여전히 고독 속에 몸부림치며 외롭게 살아갑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목회하는 짐 심발라 목사님의 책에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술집에서 일하며 마약중독자인 남자와 동거를 했는데, 그녀는 그에게 정기적으로 구타를 당했고 어느 날은 너무 맞아 고막이 터졌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뛰쳐나가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두들겨 맞거나 미움을 받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혼자 남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함께 살면서도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게임을 친구삼아 세월을 탕진하기도 하고,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가 못된 친구나 갱과 어울리기도 합니다. 술과 마약으로 자기 몸을 학대하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외롭게 살아갑니다. 현대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이런 고독의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어져 갈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과는 달리 세상은 왜 점점 더 이렇게 되어갈까요? 근본 원인은 사람들을 갈기갈기 단절시키는 ‘죄’의 속성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흥겨운 파티를 열고 즐거운 음악과 음식을 즐긴다 해도, 결말은 항상 외로움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길은 하나입니다. 예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무장해제 시키고, 그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겉으로는 흥겨워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성탄절의 참 의미를 알립시다. 예수님께 돌아오도록 도와줍시다. 오직 예수님께만 진정한 사귐과 자유와 평안과 구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