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돌 목사
우리는 고난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난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며 고통으로 몰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셨다는 그 사실에 엄청난 경이로움과 감동을 받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그 고난에 우리가 참여해야 한다면, 아니 그저 십자가를 함께 짊어져야 한다는 소리만 들어도 해보지도 않았는데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갖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입술 가운데 “고난에 동참합시다”, “주님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라고 고백하지만 그것이 무슨 뜻이고 그러한 삶이 어떠한 삶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받는 모든 고통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당하고 짊어져야하는 고난은 결국 우리의 소망을 단련하고 키워 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을 깨닫게 한다는 그 사실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는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길이지만 그 길이 참된 생명의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지만 그러기 위해서 그 음식은 스스로 죽어야 합니다. 죽음은 물질계에 생명을 주는 원천입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아들을 보내셨고 독생자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 먼저 죽으셔야 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그 고난과 죽음이 생명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온전한 생명을 얻으려면 먼저 자신을 부인하며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합니다.
헬라어 금언에 ‘파테마타 마테마타’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역하면 ‘고난은 교육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짊어지신 십자가를 짊어지는 훈련을 갖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가고 세상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훈련을 갖기 원합니다. 이번 3월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주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고난의 훈련을 갖기 원합니다. 결국 고난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한 걸음 내딛게 할 것입니다.
3월19일부터 31일까지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가 있습니다. 3월 30일 저녁에는 성금요일예배가 있습니다. 또한 3월에 드리는 주일예배에는 ‘고난’이라는 주제로 말씀이 선포됩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동참하시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