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신 손목사님께서 마지막 해를 보내시던 작년, 교역자회의가 있을 때마다 설교에 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하셨습니다. 수십년 동안의 목회를 마무리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그래도 후배들에게 가장 남기고 싶은 목회의 핵심은 역시 설교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설교는 목회의 가장 중요한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건축가에게 도면이 있고 요리사에게 주방이 있다면 목회자에게는 설교가 평생을 따라 다닙니다. 어떠한 목회자도 설교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목회자에게 설교란 그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의 은사가 있는 분도 고민이 많고 설교의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은 더더욱 고민입니다. 설교는 단순히 말솜씨가 좋아서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하나의 연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어려운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많지만 모두가 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담임목사가 되고 보니 설교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집니다. 주방장의 심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영유아부에서부터 에녹예배에 이르기까지 임마누엘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들은 얼마나 영혼을 일깨우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있는가, 뭐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됩니다. 저 자신에 관한 설교는 말할 것도 없지요. 저도 그저 연약한 한 사람에 불과한지라 자신의 설교가 청중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런데 그 마음속에 있는 깊은 동기를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교역자회의에서 자주 말씀하셨던 손목사님의 조언 한마디를 기억해 봅니다. “설교 잘 하려고 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잘 하려 하지 마세요…”
네 그렇습니다. 잘 하려고 하는 것보다 바르게, 신실하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깁니다. 강단에서 내려올 때마다 청중들의 갈채가 아니라 하나님의 미소가 느껴지는 그런 설교자로 살아야 할 텐데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미국에 이민을 왔는데요. 저의 설교는 겨우 그 정도의 언어 수준으로 우리말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어휘에 한계를 많이 느끼고 문법적으로 자주 틀리고 할 때마다 우리 성도님들이 얼마나 인내로 참아주실까 하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그러나 스피커가 부족해도 그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메시지만을 온전히 접수하시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강단에 올라갑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4) 설교의 목적이 사람의 지혜를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자주 안타나 홈런을 치고 싶지만 삼진을 당하거나 땅볼 아웃으로 물러날 때가 많습니다. 사랑과 인내로 부족한 저와 목회자들을 잘 품어 주세요. 잘 하는 것보다 바르고 올곧게 하는 것에 더욱 마음을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