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인권과 관용(tolerance)을 핵심가치로 존중하는 요즘 세상에서 거의 철칙이 되어가는 것 중에 하나는 ‘다원주의’(多元主義, Pluralism)입니다. 이것은 문화, 신념, 취향 등의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고, 타인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자는 사상적 흐름입니다.
다원주의의 한복판에 ‘종교 다원주의’가 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인정하며 공존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특별히 기독교를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단체로 지목하며,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을 포기하라고 종용합니다. 이들의 의견대로 한다면, 교회는 당장 선교를 중지해야 합니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좋아하는 비유는 ‘산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산 아래 있고, 모든 종교들은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길들입니다. 산 정상을 올라가는 길들은 다양하지만, 결국 끝까지 올라가면 산꼭대기에서 한분 절대자 하나님을 모두 만나게 되므로, 사람들이 어떤 종교를 택하든 결과는 같으니, 모든 종교가 서로 인정하며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은 산꼭대기에 계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주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자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힘이나 종교로 도달할 수 있는 ‘산’이 아니라, 도달할 수 없는 ‘하늘’에 계십니다(스5:12, 욥16:19, 22:12, 시2:4, 123:1, 전5:2, 애3:41, 단2:18-19, 마5:16, 6:9, 10:32-33, 막11:25, 엡6:9).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어떤 종교로도, 인간이 스스로 도(길 道)를 닦아 영광의 하나님께 이를 수가 없습니다(롬3:23). 종교라는 길을 통해 산에 오른다 할지라도, 그 위에는 허무하게도 인간이 만든 가상(假想)의 신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산 아래 있는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요3:31). 무엇으로도 죄와 죽음과 지옥이라는 절망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요3:16-17).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가 하늘에서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였지만, 사람들은 그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요3:32).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는 ‘길’이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라는 길(the Way)을 통하지 않고는 내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요14:6). 성경은 우리에게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히10:20-22).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번에 강사로 오신 조정민 목사님은 “기독교가 종교였다면 난 불교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만남의 대상’인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이제 종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을 통해 우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그가 만나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