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목사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와는 너무나 다를 뿐더러 도저히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시는지요? 어느 정도의 인격을 갖춘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그냥 싫은 소리 안하고 조용히 자리를 피해 주는 방법을 택할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도 상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또 그 사람과 생겨날 수 있는 갈등을 미리 피해가는 길이겠지요. 세상에서는 그것을 지혜라 부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똑같이 그런 방법을 지혜라 불러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7년이 넘게 찬양 사역을 하고 찬양팀을 인도하면서 체험했던 경험 중에 하나가 떠오릅니다. 음악을 하시는 분들 중엔 성격이 좀 독특하신 분들이 많이 계신데, 이분은 정말 보통이 아닌 분이셨습니다. 누가 인도자인지 잘 모를 정도로 요구사항도 많고 주장이 참 세신 분이어서 저도 힘들고 팀원들도 힘들어 했습니다. ‘하나님, 이분 좀 어디로 보내시면 안되나요?’ 하고 기도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랜 갈등과 어려움 끝에 결국 다른 곳으로 떠나시게 되어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찬양팀에는 그분 보다 훨씬 더 세신 분이 들어오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그 기도 취소에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부끄러운 저를 성숙시키는 하나님의 훈련이지요.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면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후에 정하십니다(눅6:12-13). 그런데 그토록 심각하게 기도하시고 선택하신 제자들의 구성에 의문점이 많이 있습니다. 출퇴근도 아니고 같이 숙식할 사람들인데 어찌 그리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셨는지... 학력, 직업, 출신지, 적성, 정치적 성향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함께 생활했습니다. 어부, 세리, 혁명가, 외향적 사람, 내향적 사람, 수다쟁이, 입이 무거운 사람 등을 함께 세우신 데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주님은 실수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을 곁에 붙여주셔서 갈등 속에서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시며 하나됨을 이루어 가기를 기대하십니다. 고난주간을 보내시면서 주님의 깊으신 마음을 헤아리는 귀한 시간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