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목회칼럼에서 저는 ‘스톡데일 패러독스’ (Stockdale Paradox)에 대해 말씀을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최고위직 전쟁포로였던 그는 65년부터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문과 협박 속에서 포로 생활을 견딘 것으로 유명한데요. 막연한 희망으로 석방 소식을 기다리던 포로들은 예외 없이 죽어갔지만 오히려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약간은 비관적인 기다림을 가졌던 포로들만 생환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가 남긴 교훈입니다.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는 오히려 우리를 절망에 빠뜨릴 가능성이 많지만 조금은 비관적인 마음이지만 냉혹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기다렸던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저는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나누던 저도 1년이나 이런 시간이 지속될 줄은 사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부활주일을 기해 현장예배에서 여러분들의 모습을 뵐 수 있는 것이 제게는 큰 기쁨입니다. 더 많은 분들을 뵙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섣부른 마음은 갖지 않겠습니다.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되 동시에 최종적인 긍정을 포기하지 않는 역설적인 이중성을 가지고 지난 1년을 함께 지내오신 성도님들 모두를 축복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좋은 뉴스들이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지난 주 보도를 보니 CDC에서는 ‘마스크 벗기’에 대해 상당히 파격적으로 발표한 것을 보면 백신 효과가 제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구촌 건너편에서는 무서운 재확산과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식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코로나 종식을 위해 함께 진심으로 기도하며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패러독스를 떠올리며 한편으로는 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움츠러든 우리의 수동적인 습관을 이겨낼 때가 왔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언젠가 부터는 집에서 잠옷을 입고 느지막이 맞이하는 주일 온라인 예배가 익숙해지신 것은 아니신지요? 팬데믹 상황이 점점 좋아질 때 언제쯤이면 몸을 움직여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실 예정이신가요? 성도님들께 한번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예배하러 가지 못하는 것’과 ‘예배하러 가지 않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시며 섬겨야 할 자리와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물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더 밝고 좋은 모습으로 여러분들을 뵐 수 있으리라는 희망적인 마음으로 한 주를 기도하며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