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기도해 왔던 VIP초청잔치가 잘 끝이 났습니다. 강사로 오신 주영훈집사님의 시차의 한계를 넘어 전해지는 간증에 많은 울림이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어제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가 열렸던 날입니다. 이제 곧 이어 전 세계의 추기경들 약 134명이 시스틴 채플에 모여서 비밀투표를 통해 전체 투표의 3분의 2가 넘어 새로운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콘클라베(Conclave)를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콘클라베는 ‘함께(Con) + ‘열쇠’(Clavis)라는 뜻으로 열쇠로 출입문을 잠근다는 뜻입니다. 외부와의 통화, 메모, 이메일, 인터넷 등 모든 것이 금지되며 어떠한 외부의 간섭이나 개입 없이 전적으로 추기경들의 대화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겠다는 표현이겠습니다. 실제로 1268-1271년까지 무려 2년9개월 동안 회의가 지속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추기경들이 이탈리아와 프랑스 계파로 나뉘어 교착상태에 이르러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콘클라베라는 제도가 공식화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외부의 압력이나 간섭 없이 오직 추기경들만의 회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아간다는 마음 자체는 매우 인상적이며 순수한 선거제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직 기도만을 통해 주님의 뜻을 찾는다는 자세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지만 역시 어떤 모임이라 하더라도 결국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사람의 생각이나 뜻이 반영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1958년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던 요한 23세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당시 76세였던 베네치아 대주교 론칼리를 많은 추기경들은 일종의 ‘과도기적 교황’으로 뽑으려 했습니다. 얼마 봉직하지 못하고 돌아가실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는 과도기 교황이 아니라 가톨릭교회의 판을 뒤흔드는 변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962년, 전 세계 주교들을 로마로 소집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그는 “교회는 세상과 숨을 같이 쉬어야 한다,” “진리를 변함없이 지키되 표현 방법은 시대에 맞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외쳤습니다. 이 공의회가 가져다 준 열매는 가톨릭교회 역사의 가장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방어적이던 자세에서 교회는 세상과 호흡하며 열린 대화를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라틴어로만 진행되던 미사를 각국의 언어로 집례 할 수 있도록 허용한 일은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고 듣는 미사에서 함께 참여하여 드리는 미사로 전환되었다는 점입니다. 추기경들의 예상과는 달리 요한 23세는 가장 개혁적인 교황으로 역사의 한 획을 남긴 셈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뜻이 모여져서 어떠한 의지로 나타날 때도 있지만 역사의 열매는 그러한 생각들을 뛰어 넘어 우리 모두에게 색다른 결과를 가져다 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는 잠언 16:9절의 말씀처럼 때로는 우리의 나약한 생각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뜻과 결과를 이루어 가시는 일을 목격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겠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마음입니다. 나의 부족한 생각을 이끄시는 성령 하나님께 오늘도 마음과 귀를 여시는 하루가 되세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