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국경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이 모두 다 하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인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조국이,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모든 나라들 중에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라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동족에게 배척을 당해 이방인들을 섬기는 사도로 일했지만(롬11: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조국의 골육지친이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을 받기를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한다며 조국을 향한 그의 강렬한 사랑을 고백했습니다(9:1-2).
구약 시대 느헤미야도 그랬습니다. 그는 전쟁포로로 사로잡혀 간 이민자의 후손으로 페르시아 땅에 태어나, 페르시아 제국의 왕을 섬기는 측근이 되었지만, 그에게도 조국은 페르시아나 세상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밖에 없는 조국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밖에 없는 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는 수요일 저녁 7시30분에 함께 모여 기도합시다. 엘리야의 기도처럼 기도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데(약5:16-18), 특별히 두 사람 이상이 모여 하는 합심기도는 더욱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마18:18-20, 행4:23-31).
기도를 알기 위해, 기도로 신자들을 구분한다면, 첫째 행동만 있고 기도다운 기도가 없는 신자들이 있으며, 둘째 기도만 하고 기도 후에 행동은 없는 신자들이 있고, 셋째 기도하고 기도한 후에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과 함께 나가서 행동하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은 모두 셋째 부류에 속했습니다. 엘리야와 느헤미야도 그랬고,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먼저 기도하고, 기도한 후에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그 기도를 성취하시도록 나가서 일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진정한 기도는 셋째 부류의 기도입니다. 우리 조국을 위해 우리도 먼저 역사의 주재이신 하나님께 나아와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그리고 기도한 후에 나가서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여 우리의 기도를 이루시도록 일합시다. 우리 조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나 땅의 모든 민족에게 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