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재정 지출에 관하여

올해에도 교회에 재정을 부족함 없이 풍성하게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아무도 모르게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십일조와 여러 헌금을 즐겁게 드려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이제 곧 있을 2017년 한 해의 재정 결산과 2018년 예산안 수립을 앞두고, 여러분이 드린 헌금이 보다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길 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이전에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제가 목회하는 동안 우리 교회는 우리 자신을 위해 쓰는 비용은 최대한 아끼고, 가능하면 많은 재정을 선교에 사용하고, 또한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2세 교역자들을 청빙하고 사례를 드리는데 사용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적게나마 어려운 가정들과 미자립 교회를 도우려고 노력해왔습니다.

10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올 때에도 우리는 예배당 건축 자재를 가능하면 모두 검소한 것으로 했고, 대부분의 가구와 의자들도 저렴한 것들로 사거나 중고품을 기증 받아 사용해왔습니다. 그래서 방마다 의자들의 색깔과 모양이 모두 달라서 초라해보여도, 우리는 부끄러움 없이 지내왔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어떤 큰 회사에 근무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회사 동료들이 회식을 하며 회사 돈을 펑펑 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면 결코 그렇게 쓰지 않았을 텐데, 회사 돈이라 아깝지 않게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식당들이 잘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의 풍조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 교회에도 조금 스며들어온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 교회가 어느덧 부자 교회가 된 것처럼, 교회 재정을 헤프게 사용하는 것 같은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는 성도님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내 지갑의 돈보다 훨씬 더 신중하고 바르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한번 쓰고 버리는 종이컵을 사무실에 가져와서 1, 2 주 사용하고, 화장실 휴지도 깨끗한 것은 주워 와서 다시 사용합니다. 교회에 손님이 오셔서 식사 대접을 하게 될 때에, 그 손님이 교회 손님인지 아니면 저의 손님에 가까운지를 구분하여, 교회 손님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만 재정부에 청구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회 재정과 교회 물건 사용에 관하여는 하나님 앞과 성도님들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이 일에 여러분도 저와 같으시지만, 혹시라도 그러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올해 결산을 하고 새해 예산을 신청하면서 바로 잡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중지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꼭 써야 할 비용은 당연히 지출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하십시오.

그래서 교회 재정이 선교와 자녀교육을 위해, 그리고 작은 미자립 교회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어려운 가정들을 돕는데 바르게 더 많이 사용되도록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풍성히 채워주실 것입니다.

영어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 주일 12월3일 오전10시에 본당에서 영어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모든 교인들이 연합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1~12학년 자녀들, EM 회중, 그리고 영어로 예배드릴 수 있는 모든 장년들은 이 예배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당일 장년 10시 2부 예배는 장소만 EM 예배실로 옮겨서 드릴뿐 동일하게 드리며, 당일 장년 1, 3부 예배는 본당에서 드립니다. 영유아부(0세~3세)와 유치부(4세, kindergarten) 예배는 평상시와 같이 그대로 드리고, 유년부, 초등부, 중고등부 11:45 예배도 평상시와 같이 드립니다.

영어 연합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첫째, 자녀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예배를 드리며 예배가 무엇인지를 느끼고 예배의 기쁨을 맛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둘째, 자녀들이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교회의 참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자녀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며 우리 교회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넷째, 이 교회가 늘 부모님들의 것이고 자신들은 덤으로 다닌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자녀들이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며, 이 교회에 대해 주인의식(ownership)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섯째, 교회에 실망하거나 어떤 이유로 교회를 떠난 자녀들을 부모가 초청하여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다시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예배는 20~30년 뒤 다음 세대의 임마누엘장로교회로 나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위의 목적들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아름답게 이루어지도록, 영어 연합예배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한미봉사회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한미봉사회는 실리콘밸리 지역 한인사회와 노인분들을 성실하게 섬겨온 귀한 봉사단체입니다. 우리 교회가 여러 해 전에 기증한 중고 밴(van)으로 일주일에 두 번 노인아파트에 계신 분들을 모셔와 노인 영양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 외에 건강 프로그램 등 사회복지 전반의 서비스를 확대하여 운영하고자 하여 8인승 새 차량이 한 대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새 밴이 구입되면, 노인아파트에 계신 독거 노인분들과 초기 치매를 앓고 계신 노부모님들을 더 많이 모시고 와서,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도록 할 계획입니다. 필요한 모금액은 1만불입니다. 돕기 원하시는 분들은 헌금 봉투에 “한미봉사회 밴 구입”이라고 써서 지정헌금을 해주세요. 커피 한 잔 2불, 간소한 음식 한 그릇 값 10불을 절약하여 드리는 작은 헌금이 외롭게 살아가시는 노부모님들을 위해 귀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한미봉사회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한미봉사회는 실리콘밸리 지역 한인사회와 노인분들을 성실하게 섬겨온 귀한 봉사단체입니다. 우리 교회가 여러 해 전에 기증한 중고 밴(van)으로 일주일에 두 번 노인아파트에 계신 분들을 모셔와 노인 영양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 외에 건강 프로그램 등 사회복지 전반의 서비스를 확대하여 운영하고자 하여 8인승 새 차량이 한 대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새 밴이 구입되면, 노인아파트에 계신 독거 노인분들과 초기 치매를 앓고 계신 노부모님들을 더 많이 모시고 와서,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도록 할 계획입니다. 필요한 모금액은 1만불입니다. 돕기 원하시는 분들은 헌금 봉투에 “한미봉사회 밴 구입”이라고 써서 지정헌금을 해주세요. 커피 한 잔 2불, 간소한 음식 한 그릇 값 10불을 절약하여 드리는 작은 헌금이 외롭게 살아가시는 노부모님들을 위해 귀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영어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 주일 12월3일 오전10시에 본당에서 영어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모든 교인들이 연합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1~12학년 자녀들, EM 회중, 그리고 영어로 예배드릴 수 있는 모든 장년들은 이 예배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당일 장년 10시 2부 예배는 장소만 EM 예배실로 옮겨서 드릴뿐 동일하게 드리며, 당일 장년 1, 3부 예배는 본당에서 드립니다. 영유아부(0세~3세)와 유치부(4세, kindergarten) 예배는 평상시와 같이 그대로 드리고, 유년부, 초등부, 중고등부 11:45 예배도 평상시와 같이 드립니다.

영어 연합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첫째, 자녀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예배를 드리며 예배가 무엇인지를 느끼고 예배의 기쁨을 맛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둘째, 자녀들이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교회의 참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자녀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며 우리 교회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넷째, 이 교회가 늘 부모님들의 것이고 자신들은 덤으로 다닌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자녀들이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며, 이 교회에 대해 주인의식(ownership)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섯째, 교회에 실망하거나 어떤 이유로 교회를 떠난 자녀들을 부모가 초청하여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다시 하나님을 찾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예배는 20~30년 뒤 다음 세대의 임마누엘장로교회로 나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위의 목적들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아름답게 이루어지도록, 영어 연합예배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자원봉사신청서를 제출합시다.

여러분은 땀 흘려 일하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괴로움으로 여기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고통으로 여깁니다. 그렇다면 노동은 저주일까요? 축복일까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범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하시고, 사람들은 저주 받은 땅에서 평생 땀을 흘려 노동을 해서 먹고 살도록 벌을 내리셨습니다(창3:17-19).

그렇다면 노동은 저주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유혹한 뱀을 저주하셨고(3:14-15) 또한 땅을 저주하셨습니다(3:17, 5:29, 8:21).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저주하셨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평생 땀 흘려 일하도록 하신 것이 벌은 벌이지만, 저주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벌을 주신 이유는 저주 받은 땅에서 흙을 일구며 평생 땀 흘려 일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흙으로 지어진 피조물임을 깨달으며(2:7)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을 배우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3:19). 그러므로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노동을 통해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열매를 거두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노동을 천시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보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며 기쁨이고 권리와 의무이지, 가능하면 피해야 할 기피대상이나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목수로 일하셨고(막6:3),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도 쉬지 않고 일하셨습니다(마4:23, 요5:18).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파하며 선교여행을 다닐 때에 주야로 힘써 일했습니다(살후3:8). 사례를 받을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즐겁게 일하는 본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3:9). 그러면서 그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명했습니다(3:10).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십시오. 자녀들에게 흙 한번 안 묻히고 연장 한번 안 들게 하고 설거지 한번 안 하게 하는 것이 자녀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녀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가정에서 일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아이들은 직장이나 세상 어디에서도 땀 흘려 일하기를 싫어하는 ‘불한당’(아닐 不, 땀 汗, 무리 黨)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 예배 후에 사역박람회를 둘러보시고 2018년 자원봉사신청서를 제출합시다. 추수감사절을 우리에게 물려준 청교도들에게도 경건한 신앙생활, 검소한 삶과 함께 노동은 그들의 기쁨이요 권리요 의무였습니다. 일합시다. 일하되 축복으로 알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일합시다. 추수의 감사와 함께 성숙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자원봉사신청서를 제출합시다.

여러분은 땀 흘려 일하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괴로움으로 여기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고통으로 여깁니다. 그렇다면 노동은 저주일까요? 축복일까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범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하시고, 사람들은 저주 받은 땅에서 평생 땀을 흘려 노동을 해서 먹고 살도록 벌을 내리셨습니다(창3:17-19).

그렇다면 노동은 저주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유혹한 뱀을 저주하셨고(3:14-15) 또한 땅을 저주하셨습니다(3:17, 5:29, 8:21). 그렇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저주하셨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평생 땀 흘려 일하도록 하신 것이 벌은 벌이지만, 저주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벌을 주신 이유는 저주 받은 땅에서 흙을 일구며 평생 땀 흘려 일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흙으로 지어진 피조물임을 깨달으며(2:7)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을 배우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3:19). 그러므로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노동을 통해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열매를 거두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노동을 천시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보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며 기쁨이고 권리와 의무이지, 가능하면 피해야 할 기피대상이나 골칫거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목수로 일하셨고(막6:3),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에도 쉬지 않고 일하셨습니다(마4:23, 요5:18).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파하며 선교여행을 다닐 때에 주야로 힘써 일했습니다(살후3:8). 사례를 받을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즐겁게 일하는 본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3:9). 그러면서 그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명했습니다(3:10).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일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십시오. 자녀들에게 흙 한번 안 묻히고 연장 한번 안 들게 하고 설거지 한번 안 하게 하는 것이 자녀를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녀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가정에서 일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아이들은 직장이나 세상 어디에서도 땀 흘려 일하기를 싫어하는 ‘불한당’(아닐 不, 땀 汗, 무리 黨)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 예배 후에 사역박람회를 둘러보시고 2018년 자원봉사신청서를 제출합시다. 추수감사절을 우리에게 물려준 청교도들에게도 경건한 신앙생활, 검소한 삶과 함께 노동은 그들의 기쁨이요 권리요 의무였습니다. 일합시다. 일하되 축복으로 알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일합시다. 추수의 감사와 함께 성숙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18년 자원봉사신청을 받습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 교회는 자원봉사신청을 하는 기간을 갖는데, 올해는 오늘부터 2018년 자원봉사신청서를 받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어떤 부서에서 섬길지를 놓고 기도하고, 또 로비에서 진행되는 ‘사역박람회’를 둘러보시고 관심 있는 부서에 문의를 하신 후 자원봉사신청서를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10 사역위원회가 있고, 그 아래 160여개의 팀들이 있어서, 매년 500여명의 성도님들이 자원봉사신청을 한 후 섬겨왔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 안팎을 섬기며 활발하게 살아있는 교회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며,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름 없이 섬겨온 많은 성도님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매년 섬겨오신 분들 외에, 우리 교회 가족이 된 후 아직 한 번도 봉사신청을 하지 않았던 분들도 다수 참가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으며(막10;4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행20:35).

내가 시간을 내고 땀을 흘려서 섬기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를 통하여, 교회 안에 여러 어린 자녀들, 교회 밖에 투병하는 분들, 무숙자들, 양로원에 계신 노부모님들, 그리고 선교지에 잃어버린 영혼들에게로 흘러가지만, 실제로 더 큰 은혜를 받는 것은 섬김을 받는 그들보다 섬기는 나 자신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미 섬겨보신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첫째, 먼저 오늘 나누어드린 2018년 자원봉사신청서를 읽어보세요. 
둘째, 사역박람회에 가셔서 찾아가 어떤 사역들이 진행되는지 문의해보세요. 또한 목자/부목자님들이나 현재 그 부서에서 섬기고 있는 분들에게 물어보셔도 됩니다.
셋째, 나에게 주신 은사, 그 사역을 위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나의 시간, 그리고 어떤 사역이 나에게 기쁨을 주는지 등을 고려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1~2 부서를 체크하여 제출하시면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 속한 지체로 구성된 ‘몸’입니다(고전12:12). 내 몸의 지체들이 하나도 놀지 않고 모두 함께 섬기듯이, 우리도 어느 부서에서든지 섬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섬김을 통하여 우리는 이전에 맛볼 수 없었던 기쁨을 누리고, 그 안에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과 교제하며 함께 자라가게 됩니다. 섬김을 통하여 그런 기쁨과 성숙이 새해에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2018년 자원봉사신청을 받습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 교회는 자원봉사신청을 하는 기간을 갖는데, 올해는 오늘부터 2018년 자원봉사신청서를 받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어떤 부서에서 섬길지를 놓고 기도하고, 또 로비에서 진행되는 ‘사역박람회’를 둘러보시고 관심 있는 부서에 문의를 하신 후 자원봉사신청서를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10 사역위원회가 있고, 그 아래 160여개의 팀들이 있어서, 매년 500여명의 성도님들이 자원봉사신청을 한 후 섬겨왔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 안팎을 섬기며 활발하게 살아있는 교회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며,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름 없이 섬겨온 많은 성도님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특별히 매년 섬겨오신 분들 외에, 우리 교회 가족이 된 후 아직 한 번도 봉사신청을 하지 않았던 분들도 다수 참가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으며(막10;4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행20:35).

내가 시간을 내고 땀을 흘려서 섬기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를 통하여, 교회 안에 여러 어린 자녀들, 교회 밖에 투병하는 분들, 무숙자들, 양로원에 계신 노부모님들, 그리고 선교지에 잃어버린 영혼들에게로 흘러가지만, 실제로 더 큰 은혜를 받는 것은 섬김을 받는 그들보다 섬기는 나 자신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미 섬겨보신 많은 분들이 한결같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첫째, 먼저 오늘 나누어드린 2018년 자원봉사신청서를 읽어보세요. 
둘째, 사역박람회에 가셔서 찾아가 어떤 사역들이 진행되는지 문의해보세요. 또한 목자/부목자님들이나 현재 그 부서에서 섬기고 있는 분들에게 물어보셔도 됩니다.
셋째, 나에게 주신 은사, 그 사역을 위해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나의 시간, 그리고 어떤 사역이 나에게 기쁨을 주는지 등을 고려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1~2 부서를 체크하여 제출하시면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 속한 지체로 구성된 ‘몸’입니다(고전12:12). 내 몸의 지체들이 하나도 놀지 않고 모두 함께 섬기듯이, 우리도 어느 부서에서든지 섬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섬김을 통하여 우리는 이전에 맛볼 수 없었던 기쁨을 누리고, 그 안에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과 교제하며 함께 자라가게 됩니다. 섬김을 통하여 그런 기쁨과 성숙이 새해에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심장을 주님께 드립니다.

김인환 목사

저는 중학교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SFC(Student For Christ)라는 선교단체에 참석했었습니다. 제가 개혁주의를 배우기 시작한 곳이지요. 그때는 개혁주의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이 낯선 단어를 즐겨 썼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와 교회 현장 속에서 개혁주의 신학에 대해 조금씩 더 배워가고 있습니다.


calvin.png

제가 SFC 하면 생각나는 것이 SFC logo입니다. 오른손에 심장을 들고 있는 그림입니다. 그 심장을 주님께 드리는 의미지요. 단순해보이지만,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칼빈 신학교(Calvin Seminary)의 로고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물론, 칼빈 신학교의 로고도 종교개혁자 칼빈에게서 가져 왔지요.

칼빈은 루터보다 25년 늦게 프랑스에서 태어났습니다. 23살쯤 회심했고, 종교개혁자가 되었습니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운동을 했는데, 어이없게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3년이 지났는데, 제네바로 다시 돌아오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칼빈은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 십자가를 지느니, 차라리 백 번 죽는 것을 택하겠다!” 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평생 동역자였던 파렐에게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내가 나 자신에게 속한게 아님을 상기합니다. 그래서 마치 희생제물이 바쳐지듯이, 제 심장을 주님께 바칩니다. 내 영을 묶어서 하나님께 복종합니다.”

이후 제네바로 돌아간 칼빈은 “나의 심장을 주님께 드립니다. 즉시, 그리고 신실하게(My heart I offer to you lord, promptly and sincerely)”란 문구를 자신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심장을 드리는 그림을 자기 코트 소매에 새기고 다녔습니다.

심장 속에는 피가 가득합니다. 또한 심장은 그 피를 온몸 곳곳에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복음은 피 묻은 복음입니다. 복음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묻어있습니다. 그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지는 복음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피 묻은 복음을 주신 주님은 또한 우리의 피 묻은 심장을 원하십니다. 우리 가슴을 열고 우리 심장을 주님께 바치길 원하고 계십니다. “네 심장을 다오.”라고 하십니다.

칼빈의 손을 다시 보십시오. 그는 오른손으로 “즉시, 신실하게” 자기 심장을 떼어 내어 주님께 바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볼 때 마다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은 나의 심장도 원하고 계시다고, 나도 주님께 나의 심장을 바쳐야 한다고...

VIP를 목장에 초청하여 사랑으로 계속 섬깁시다.

지난 21일 토요일 VIP 초청잔치에 164분의 VIP들이 참가하여서 간증과 찬양과 복음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전도위원회에서 이 행사를 처음 준비할 때는 예전처럼 30, 40분 정도 오실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가할 줄은 몰랐습니다.

귀한 간증과 찬양을 해주신 신애라 집사님과 류승주 자매님께 감사를 드리며, 많은 수고를 하신 전도위원회, 그리고 함께 섬겨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VIP들을 초청하여 함께 오신 모든 목장과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배후에서 이 모든 것을 친히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큰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제 잔치는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섬김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된 것입니다. VIP 한분 한분이 살아계신 그들의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얻을 때까지, 이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계속 쉬지 않고 섬깁시다.

무엇보다 이들을 각각 여러분의 목장에 초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모신 ‘생명의 공동체’로서 목장은 그 자체로 놀라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장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모습을 이들로 보게 합시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참된 사랑과 평안을 이들이 느끼게 합시다. 언젠가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되면, 이들도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될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며

올해는 마틴 루터가 1517년10월31일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붙임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이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개혁자들은 첫째,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쳤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을 결정하는 권위는 교회 회의 결정이나 전통에 있지 않고, 오직 성경, 곧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오직 그리스도’(Solo Christo)을 외쳤습니다. 구원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달렸으며,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나 사람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한분뿐입니다.

셋째, ‘오직 은혜’(Sola Gratia)를 외쳤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자기 의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넷째, ‘오직 믿음’(Sola Fide)을 외쳤습니다. 구원은 오직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받습니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외쳤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모든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입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교회는 개혁되었지만 그러나 그렇게 ‘개혁된 교회’들(reformed churches)은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이전의 천주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묵은 땅’을 기경하고, 개혁자들이 외쳤던 성경적 교회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함께 하실 것입니다.

VIP를 목장에 초청하여 사랑으로 계속 섬깁시다.

지난 21일 토요일 VIP 초청잔치에 164분의 VIP들이 참가하여서 간증과 찬양과 복음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전도위원회에서 이 행사를 처음 준비할 때는 예전처럼 30, 40분 정도 오실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가할 줄은 몰랐습니다.

귀한 간증과 찬양을 해주신 신애라 집사님과 류승주 자매님께 감사를 드리며, 많은 수고를 하신 전도위원회, 그리고 함께 섬겨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VIP들을 초청하여 함께 오신 모든 목장과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배후에서 이 모든 것을 친히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큰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제 잔치는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섬김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된 것입니다. VIP 한분 한분이 살아계신 그들의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얻을 때까지, 이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계속 쉬지 않고 섬깁시다.

무엇보다 이들을 각각 여러분의 목장에 초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모신 ‘생명의 공동체’로서 목장은 그 자체로 놀라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장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모습을 이들로 보게 합시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참된 사랑과 평안을 이들이 느끼게 합시다. 언젠가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되면, 이들도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될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며

올해는 마틴 루터가 1517년10월31일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붙임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이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개혁자들은 첫째,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쳤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을 결정하는 권위는 교회 회의 결정이나 전통에 있지 않고, 오직 성경, 곧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오직 그리스도’(Solo Christo)을 외쳤습니다. 구원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달렸으며,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나 사람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한분뿐입니다.

셋째, ‘오직 은혜’(Sola Gratia)를 외쳤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자기 의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넷째, ‘오직 믿음’(Sola Fide)을 외쳤습니다. 구원은 오직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받습니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외쳤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모든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입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교회는 개혁되었지만 그러나 그렇게 ‘개혁된 교회’들(reformed churches)은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이전의 천주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묵은 땅’을 기경하고, 개혁자들이 외쳤던 성경적 교회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함께 하실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에게 일리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들이 수없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신들이 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창조주 하나님도 만들어진 신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에는 심각한 오류와 비약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 말씀처럼,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실존과 영원하신 능력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을 만큼 자명합니다(롬1:20). 어떤 집이 있으면 그 집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집을 지은 건축자가 반드시 있듯이, 질서 있는 세계로 우주(집 宇, 집 宙)와 만물이 존재한다면 이것도 저절로(by chance) 생긴 것이 아니라 이것을 설계하고 만드신 창조주가 반드시 계십니다(히3:4).

중동의 역사에 보면, 히스기야 시대에도 리처드 도킨스같이 동일한 착각을 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큰 군대를 이끌고 유다 왕국을 침입했던 앗수르(Assyria) 제국의 산헤립 왕이 그랬습니다. 앗수르 제국의 선왕들이 여러 민족의 많은 ‘만들어진 신들’을 불태우고 멸망시켜버렸음을 자랑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동일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사36장, 37:8-20).

그런데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만들어진 신’이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사37:16), 들으시고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고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사37:4). 산헤립 왕은 이 치명적인 착각으로 인하여, 참혹한 멸망을 당했습니다(사37:36-38).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혹시라도 착각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눈을 들어 밤하늘의 별들과 광대한 우주를 보십시오. 지어진 세계와 생명의 신비, 질서, 조화를 보십시오. 그것을 설계하고 지으신 창조주가 살아계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찾고 계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돌아오십시오(전12:1). 그분을 찾고 구하면, 그분이 만나주실 것입니다(렘29:13).

만들어진 신들은 죽은 신들이기에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여러분을 창조하시면서(창1:26-27) 자신이 볼 수 있는 분이기에, 우리에게 눈을 지어주신 분입니다. 사람에게 입을 지어주신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이 시간도 여러분을 보고 계시며 듣고 계시고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시94:9).

저는 6살 때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제 곁에는 낳아주신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지만, 저에게는 다른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저는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저의 아버지로 모시고 지난 세월을 살았습니다(롬8:15-17). 정말 행복한 세월이었습니다. 그분은 너무 너무 좋은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죽기 전에 가능하면 빨리 돌아오십시오. 돌아와야 비로소 살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주인입니까, 손님입니까?

지난 주일 예배 후에 어떤 어린아이가 흘린 휴지 조각이 본당 로비에 떨어져있었습니다. 보는 분들이 많아서 그 휴지를 제가 집어야 하는지 잠시 생각하는 동안에, 그 옆을 지나던 어떤 권사님이 그 휴지를 자연스럽게 집으셨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리에 스쳐지나간 생각은 ‘주인의식’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 권사님은 교회의 손님이 아니라 이 교회의 가족이요 주인이셨습니다.

작년 언젠가 주일 설교 중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교회 화장실 바닥에 휴지들이 널려있는 것을 볼 때에, 손님과 주인이 구별됩니다. “이 교회는 왜 이렇게 화장실이 더럽지?” 생각하고 그냥 나오신다면 여러분은 이 교회에 아직 손님입니다. 방문객들이 혹시라도 볼까봐 얼른 휴지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고 나오신다면 여러분은 이 교회의 가족이요 주인입니다.

어떤 식당에 불이 나서 손님들이 뛰쳐나와 멀리서 불구경을 하고 있는데, 불이 난 식당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였을까요? 바로 식당 주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손님들처럼 불구경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식당은 바로 그들의 부모의 것이었고 또한 그들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가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여러분의 교회입니까? 그러면 이 교회의 모든 일들을 손님처럼 구경하지 말고, 주인의식(ownership)을 가지고 참여합시다. 흉은 덮고, 일은 즐겁게 적극적으로 함께 나누어합시다.

손님이나 종업원들은 봉사한 대가를 요구하고 시간을 계산하지만, 주인들은 시간을 물 쓰듯 쓰고 땀 흘려 험한 일을 많이 해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 일이 내 아버지의 일이고 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번에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VIP들을 위해 잔치를 엽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베푸시는 여러분의 잔치입니다. 불구경하는 손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VIP를 초청하여 함께 모시고 옵시다. 그들도 교회의 손님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10월21일(토) 오후5시 VIP 초청잔치에 아직 믿지 않는 남편을 초청하여 함께 옵시다.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친구들, 직장 동료, 이웃을 초대하여 모시고 옵시다. 미리 만나서 차를 마시거나 점심을 같이 먹고, 당일에 찾아가서 모시고 오면, 꼭 따라올 것입니다. 잔치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여 떡을 먹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잔치 자리를 채웁시다. 그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세상에서 맛 볼 수 없는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잔치를 베푸시는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지난 7월4일에 부산 사하구 감천동의 한 작은 아파트 거실에서 한모씨가 숨진채 발견되었습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주민 신고로 119 구조대가 한씨의 주검을 발견했는데, 검시관은 시신의 부패 상태로 미루어 한씨가 보름 전쯤 숨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최근 자주 발생하는 고독사(孤獨死)의 한 사례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 손자, 며느리와 함께 살던 대가족에서 핵가족 시대로 바뀌더니, 이제는 청년들의 결혼 포기와 이혼, 그리고 고령화와 부모 모시기를 기피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났고, 그와 함께 사회에서 단절된 채 홀로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는 고독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단어 중에는 ‘혼밥’ ‘혼술’이 있는데, 외롭게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 혼자서 쓸쓸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숫자가 갑자기 많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독사가 급증하고, 혼밥족, 혼술족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이유는 하나, 곧 가정이 해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회공포증, 대인기피증에 방안에 콕 박혀 살아가는 ‘방콕족’이 늘어가고 있고, 고독에 편승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분노,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마약, 술, 게임, 포르노, 도박 중독에 소멸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져갈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모든 고통의 근본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도 단 하나,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창1:27),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하심으로 가정을 만드셨습니다(창2:24). 오늘날 사회와 개인의 모든 고통과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은혜로 가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영적 가정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가정과 교회에는 세상의 기관들과 구별되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가정과 교회가 ‘생명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만든 수많은 기관들이 있지만, 생명이 태어나는 공동체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이루는 가정뿐이며, 오직 교회에서만 죽은 영혼들이 ‘새 생명’으로 거듭 납니다.

세상의 많은 기관들 중에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공동체는 오직 가정과 교회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가정을 사수하십시오. 여러분도 살고 자녀들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며 온갖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영적 가족인 교회로 초청하십시오. 이번 VIP 초청 잔치에 모시고 오십시오.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면,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과 고통을 내려놓고 비로소 진정한 기쁨과 영원히 빼앗길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우십시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지난 7월4일에 부산 사하구 감천동의 한 작은 아파트 거실에서 한모씨가 숨진채 발견되었습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주민 신고로 119 구조대가 한씨의 주검을 발견했는데, 검시관은 시신의 부패 상태로 미루어 한씨가 보름 전쯤 숨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최근 자주 발생하는 고독사(孤獨死)의 한 사례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 손자, 며느리와 함께 살던 대가족에서 핵가족 시대로 바뀌더니, 이제는 청년들의 결혼 포기와 이혼, 그리고 고령화와 부모 모시기를 기피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났고, 그와 함께 사회에서 단절된 채 홀로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는 고독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단어 중에는 ‘혼밥’ ‘혼술’이 있는데, 외롭게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 혼자서 쓸쓸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숫자가 갑자기 많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독사가 급증하고, 혼밥족, 혼술족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이유는 하나, 곧 가정이 해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회공포증, 대인기피증에 방안에 콕 박혀 살아가는 ‘방콕족’이 늘어가고 있고, 고독에 편승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분노,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마약, 술, 게임, 포르노, 도박 중독에 소멸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져갈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모든 고통의 근본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도 단 하나,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창1:27),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하심으로 가정을 만드셨습니다(창2:24). 오늘날 사회와 개인의 모든 고통과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은혜로 가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영적 가정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가정과 교회에는 세상의 기관들과 구별되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가정과 교회가 ‘생명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만든 수많은 기관들이 있지만, 생명이 태어나는 공동체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이루는 가정뿐이며, 오직 교회에서만 죽은 영혼들이 ‘새 생명’으로 거듭 납니다.

세상의 많은 기관들 중에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공동체는 오직 가정과 교회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가정을 사수하십시오. 여러분도 살고 자녀들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며 온갖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영적 가족인 교회로 초청하십시오. 이번 VIP 초청 잔치에 모시고 오십시오.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면,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과 고통을 내려놓고 비로소 진정한 기쁨과 영원히 빼앗길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같은 비전을 품은 다음 세대

조종연 목사

몇 주 전 어느 성도님의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그 분은 교회를 개척하고 한 교회에서 40여년을 섬기시다 은퇴하신 은퇴 장로님이셨고 그 아드님은 아버지가 섬긴 같은 교회에서 시무 장로로 섬기며 믿음의 세대를 이어가는 가정이셨습니다.

이사로 인해 교회를 옮기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옮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 시대에 40여년 이상을 한 교회에서 믿음의 2세대가 함께 섬긴 사실이 너무도 진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교회에서 자라는 자녀들도 그 믿음의 가정처럼 부모 세대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꿈을 꾸는 믿음의 다음 세대가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사사기가 말한 다른 세대가 아닌 부모가 믿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체험하고 고백할 수 있도록 자녀들을 지도하고 그들이 이민 교회의 새로운 리더들이 되도록 다음 세대를 키워가는 일에 힘을 쓰고 열심을 내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를 다녀와서

조종연 목사

무더운 날씨일 줄 예상했었는데 주최 교회 성도님들의 많은 기도 때문 이였는지 텍사스 달라스의 날씨는 그렇게 무덥지 않았습니다. 2시간의 시차와 바쁜 강의 일정으로 몸은 조금 고단했지만 기쁨으로 섬기는 달라스 예닮교회 성도님들의 모습과 최형기 목사님의 가정교회 길라잡이 수업을 들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휴스턴을 휩쓴 태풍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교회들 중의 하나인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는 침수된 가정이 수십 개나 되었지만 재해로 인해 교회가 더욱 하나 되고 오히려 성도간의 사랑이 단단해지는 기회가 되었다는 말씀도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집이 침수된 교인들을 위해 자기 집을 오픈하겠다는 자원을 성도들로부터 받았는데 정작 피해 받은 가정들이 쉼터를 자원한 가정에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 목장 안의 다른 목원 가정들로부터 숙식을 제공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교회들은 자원 봉사자들을 모으고 조직하고 재난 현장에 와서 돕는 일에는 아주 탁월했지만 가정을 오픈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이 교회 성도들은 피해 가정을 위해 자기 집을 제공하고 그들을 돌보고 위로함으로 홍수로 인한 재난의 시간을 함께 이겨내었고 침수 후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에도 많은 성도들이 대거로 참여해서 피해 가정들이 빨리 회복하도록 도움으로 가정교회의 숨은 저력을 보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교회가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였고 예수님이 원하셨던 교회 공동체가 가족 공동체였고 바울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동역자의 이름을 로마서에서 열거하듯 서로 깊이 사랑했던 초대 교회처럼, 홍수의 피해를 함께 극복한 휴스턴 서울 교회처럼, 우리 교회 목장들도 그런 성경적인 교회, 가족과 같은 돌봄과 서로를 향한 헌신, 섬김과 사랑이 충만한 교회, 교인들 모두가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고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가 더하여져지는 교회로 더욱 더 발돋움하길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