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를 목장에 초청하여 사랑으로 계속 섬깁시다.

지난 21일 토요일 VIP 초청잔치에 164분의 VIP들이 참가하여서 간증과 찬양과 복음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전도위원회에서 이 행사를 처음 준비할 때는 예전처럼 30, 40분 정도 오실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가할 줄은 몰랐습니다.

귀한 간증과 찬양을 해주신 신애라 집사님과 류승주 자매님께 감사를 드리며, 많은 수고를 하신 전도위원회, 그리고 함께 섬겨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VIP들을 초청하여 함께 오신 모든 목장과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배후에서 이 모든 것을 친히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큰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제 잔치는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섬김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시작된 것입니다. VIP 한분 한분이 살아계신 그들의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얻을 때까지, 이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계속 쉬지 않고 섬깁시다.

무엇보다 이들을 각각 여러분의 목장에 초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모신 ‘생명의 공동체’로서 목장은 그 자체로 놀라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장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모습을 이들로 보게 합시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참된 사랑과 평안을 이들이 느끼게 합시다. 언젠가 하나님의 은혜의 때가 되면, 이들도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될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며

올해는 마틴 루터가 1517년10월31일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붙임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이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개혁자들은 첫째,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쳤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을 결정하는 권위는 교회 회의 결정이나 전통에 있지 않고, 오직 성경, 곧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오직 그리스도’(Solo Christo)을 외쳤습니다. 구원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달렸으며,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나 사람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한분뿐입니다.

셋째, ‘오직 은혜’(Sola Gratia)를 외쳤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자기 의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넷째, ‘오직 믿음’(Sola Fide)을 외쳤습니다. 구원은 오직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받습니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외쳤습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모든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입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교회는 개혁되었지만 그러나 그렇게 ‘개혁된 교회’들(reformed churches)은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이전의 천주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묵은 땅’을 기경하고, 개혁자들이 외쳤던 성경적 교회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함께 하실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에게 일리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들이 수없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신들이 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창조주 하나님도 만들어진 신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에는 심각한 오류와 비약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 말씀처럼,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실존과 영원하신 능력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을 만큼 자명합니다(롬1:20). 어떤 집이 있으면 그 집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집을 지은 건축자가 반드시 있듯이, 질서 있는 세계로 우주(집 宇, 집 宙)와 만물이 존재한다면 이것도 저절로(by chance) 생긴 것이 아니라 이것을 설계하고 만드신 창조주가 반드시 계십니다(히3:4).

중동의 역사에 보면, 히스기야 시대에도 리처드 도킨스같이 동일한 착각을 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큰 군대를 이끌고 유다 왕국을 침입했던 앗수르(Assyria) 제국의 산헤립 왕이 그랬습니다. 앗수르 제국의 선왕들이 여러 민족의 많은 ‘만들어진 신들’을 불태우고 멸망시켜버렸음을 자랑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동일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사36장, 37:8-20).

그런데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만들어진 신’이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사37:16), 들으시고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고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사37:4). 산헤립 왕은 이 치명적인 착각으로 인하여, 참혹한 멸망을 당했습니다(사37:36-38).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혹시라도 착각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눈을 들어 밤하늘의 별들과 광대한 우주를 보십시오. 지어진 세계와 생명의 신비, 질서, 조화를 보십시오. 그것을 설계하고 지으신 창조주가 살아계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찾고 계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돌아오십시오(전12:1). 그분을 찾고 구하면, 그분이 만나주실 것입니다(렘29:13).

만들어진 신들은 죽은 신들이기에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여러분을 창조하시면서(창1:26-27) 자신이 볼 수 있는 분이기에, 우리에게 눈을 지어주신 분입니다. 사람에게 입을 지어주신 창조주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이 시간도 여러분을 보고 계시며 듣고 계시고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시94:9).

저는 6살 때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제 곁에는 낳아주신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지만, 저에게는 다른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저는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저의 아버지로 모시고 지난 세월을 살았습니다(롬8:15-17). 정말 행복한 세월이었습니다. 그분은 너무 너무 좋은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죽기 전에 가능하면 빨리 돌아오십시오. 돌아와야 비로소 살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주인입니까, 손님입니까?

지난 주일 예배 후에 어떤 어린아이가 흘린 휴지 조각이 본당 로비에 떨어져있었습니다. 보는 분들이 많아서 그 휴지를 제가 집어야 하는지 잠시 생각하는 동안에, 그 옆을 지나던 어떤 권사님이 그 휴지를 자연스럽게 집으셨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리에 스쳐지나간 생각은 ‘주인의식’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 권사님은 교회의 손님이 아니라 이 교회의 가족이요 주인이셨습니다.

작년 언젠가 주일 설교 중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교회 화장실 바닥에 휴지들이 널려있는 것을 볼 때에, 손님과 주인이 구별됩니다. “이 교회는 왜 이렇게 화장실이 더럽지?” 생각하고 그냥 나오신다면 여러분은 이 교회에 아직 손님입니다. 방문객들이 혹시라도 볼까봐 얼른 휴지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고 나오신다면 여러분은 이 교회의 가족이요 주인입니다.

어떤 식당에 불이 나서 손님들이 뛰쳐나와 멀리서 불구경을 하고 있는데, 불이 난 식당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였을까요? 바로 식당 주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손님들처럼 불구경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식당은 바로 그들의 부모의 것이었고 또한 그들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가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여러분의 교회입니까? 그러면 이 교회의 모든 일들을 손님처럼 구경하지 말고, 주인의식(ownership)을 가지고 참여합시다. 흉은 덮고, 일은 즐겁게 적극적으로 함께 나누어합시다.

손님이나 종업원들은 봉사한 대가를 요구하고 시간을 계산하지만, 주인들은 시간을 물 쓰듯 쓰고 땀 흘려 험한 일을 많이 해도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 일이 내 아버지의 일이고 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번에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VIP들을 위해 잔치를 엽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베푸시는 여러분의 잔치입니다. 불구경하는 손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VIP를 초청하여 함께 모시고 옵시다. 그들도 교회의 손님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10월21일(토) 오후5시 VIP 초청잔치에 아직 믿지 않는 남편을 초청하여 함께 옵시다.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친구들, 직장 동료, 이웃을 초대하여 모시고 옵시다. 미리 만나서 차를 마시거나 점심을 같이 먹고, 당일에 찾아가서 모시고 오면, 꼭 따라올 것입니다. 잔치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여 떡을 먹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잔치 자리를 채웁시다. 그들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세상에서 맛 볼 수 없는 영원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잔치를 베푸시는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지난 7월4일에 부산 사하구 감천동의 한 작은 아파트 거실에서 한모씨가 숨진채 발견되었습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주민 신고로 119 구조대가 한씨의 주검을 발견했는데, 검시관은 시신의 부패 상태로 미루어 한씨가 보름 전쯤 숨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최근 자주 발생하는 고독사(孤獨死)의 한 사례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 손자, 며느리와 함께 살던 대가족에서 핵가족 시대로 바뀌더니, 이제는 청년들의 결혼 포기와 이혼, 그리고 고령화와 부모 모시기를 기피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났고, 그와 함께 사회에서 단절된 채 홀로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는 고독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단어 중에는 ‘혼밥’ ‘혼술’이 있는데, 외롭게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 혼자서 쓸쓸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숫자가 갑자기 많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독사가 급증하고, 혼밥족, 혼술족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이유는 하나, 곧 가정이 해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회공포증, 대인기피증에 방안에 콕 박혀 살아가는 ‘방콕족’이 늘어가고 있고, 고독에 편승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분노,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마약, 술, 게임, 포르노, 도박 중독에 소멸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져갈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모든 고통의 근본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도 단 하나,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창1:27),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하심으로 가정을 만드셨습니다(창2:24). 오늘날 사회와 개인의 모든 고통과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은혜로 가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영적 가정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가정과 교회에는 세상의 기관들과 구별되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가정과 교회가 ‘생명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만든 수많은 기관들이 있지만, 생명이 태어나는 공동체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이루는 가정뿐이며, 오직 교회에서만 죽은 영혼들이 ‘새 생명’으로 거듭 납니다.

세상의 많은 기관들 중에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공동체는 오직 가정과 교회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가정을 사수하십시오. 여러분도 살고 자녀들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며 온갖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영적 가족인 교회로 초청하십시오. 이번 VIP 초청 잔치에 모시고 오십시오.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면,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과 고통을 내려놓고 비로소 진정한 기쁨과 영원히 빼앗길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우십시오

신문 보도에 의하면, 지난 7월4일에 부산 사하구 감천동의 한 작은 아파트 거실에서 한모씨가 숨진채 발견되었습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주민 신고로 119 구조대가 한씨의 주검을 발견했는데, 검시관은 시신의 부패 상태로 미루어 한씨가 보름 전쯤 숨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최근 자주 발생하는 고독사(孤獨死)의 한 사례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들, 손자, 며느리와 함께 살던 대가족에서 핵가족 시대로 바뀌더니, 이제는 청년들의 결혼 포기와 이혼, 그리고 고령화와 부모 모시기를 기피하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났고, 그와 함께 사회에서 단절된 채 홀로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는 고독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단어 중에는 ‘혼밥’ ‘혼술’이 있는데, 외롭게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 혼자서 쓸쓸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숫자가 갑자기 많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독사가 급증하고, 혼밥족, 혼술족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이유는 하나, 곧 가정이 해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외롭게 살다가 외롭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회공포증, 대인기피증에 방안에 콕 박혀 살아가는 ‘방콕족’이 늘어가고 있고, 고독에 편승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분노,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마약, 술, 게임, 포르노, 도박 중독에 소멸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져갈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모든 고통의 근본 이유는 단 하나,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길도 단 하나,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창1:27),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게 하심으로 가정을 만드셨습니다(창2:24). 오늘날 사회와 개인의 모든 고통과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은혜로 가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영적 가정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가정과 교회에는 세상의 기관들과 구별되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가정과 교회가 ‘생명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만든 수많은 기관들이 있지만, 생명이 태어나는 공동체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이루는 가정뿐이며, 오직 교회에서만 죽은 영혼들이 ‘새 생명’으로 거듭 납니다.

세상의 많은 기관들 중에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공동체는 오직 가정과 교회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가정을 사수하십시오. 여러분도 살고 자녀들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며 온갖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영적 가족인 교회로 초청하십시오. 이번 VIP 초청 잔치에 모시고 오십시오.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오면,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과 고통을 내려놓고 비로소 진정한 기쁨과 영원히 빼앗길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같은 비전을 품은 다음 세대

조종연 목사

몇 주 전 어느 성도님의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그 분은 교회를 개척하고 한 교회에서 40여년을 섬기시다 은퇴하신 은퇴 장로님이셨고 그 아드님은 아버지가 섬긴 같은 교회에서 시무 장로로 섬기며 믿음의 세대를 이어가는 가정이셨습니다.

이사로 인해 교회를 옮기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옮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 시대에 40여년 이상을 한 교회에서 믿음의 2세대가 함께 섬긴 사실이 너무도 진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교회에서 자라는 자녀들도 그 믿음의 가정처럼 부모 세대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꿈을 꾸는 믿음의 다음 세대가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사사기가 말한 다른 세대가 아닌 부모가 믿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체험하고 고백할 수 있도록 자녀들을 지도하고 그들이 이민 교회의 새로운 리더들이 되도록 다음 세대를 키워가는 일에 힘을 쓰고 열심을 내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정교회 목회자 컨퍼런스를 다녀와서

조종연 목사

무더운 날씨일 줄 예상했었는데 주최 교회 성도님들의 많은 기도 때문 이였는지 텍사스 달라스의 날씨는 그렇게 무덥지 않았습니다. 2시간의 시차와 바쁜 강의 일정으로 몸은 조금 고단했지만 기쁨으로 섬기는 달라스 예닮교회 성도님들의 모습과 최형기 목사님의 가정교회 길라잡이 수업을 들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휴스턴을 휩쓴 태풍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교회들 중의 하나인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는 침수된 가정이 수십 개나 되었지만 재해로 인해 교회가 더욱 하나 되고 오히려 성도간의 사랑이 단단해지는 기회가 되었다는 말씀도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집이 침수된 교인들을 위해 자기 집을 오픈하겠다는 자원을 성도들로부터 받았는데 정작 피해 받은 가정들이 쉼터를 자원한 가정에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 목장 안의 다른 목원 가정들로부터 숙식을 제공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교회들은 자원 봉사자들을 모으고 조직하고 재난 현장에 와서 돕는 일에는 아주 탁월했지만 가정을 오픈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이 교회 성도들은 피해 가정을 위해 자기 집을 제공하고 그들을 돌보고 위로함으로 홍수로 인한 재난의 시간을 함께 이겨내었고 침수 후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에도 많은 성도들이 대거로 참여해서 피해 가정들이 빨리 회복하도록 도움으로 가정교회의 숨은 저력을 보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교회가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였고 예수님이 원하셨던 교회 공동체가 가족 공동체였고 바울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동역자의 이름을 로마서에서 열거하듯 서로 깊이 사랑했던 초대 교회처럼, 홍수의 피해를 함께 극복한 휴스턴 서울 교회처럼, 우리 교회 목장들도 그런 성경적인 교회, 가족과 같은 돌봄과 서로를 향한 헌신, 섬김과 사랑이 충만한 교회, 교인들 모두가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고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가 더하여져지는 교회로 더욱 더 발돋움하길 소망해 봅니다.

어린이들이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과거에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교회에서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오기 때문에 그냥 덤으로 따라오는 존재, 있으면 좋고 없어도 되는 존재, “헌금 한 푼 안 내는 것들이 교회만 어지럽히고 시끄럽게 하는 존재”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을 배정할 때도, 예산을 책정할 때도 늘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그렇게 어린 영혼들의 소중함을 간과한 결과가 오늘날 한국 교회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 주요 교단들의 보고에 의하면, 한국 교회들의 절반 이상에 어린이 주일학교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교회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없다는 말은 한국 교회의 미래가 없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현실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어린 세대를 놓고 세상과 교회가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교회를 압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폭력을 자극하는 게임, 성적 욕망을 부추기는 온갖 쾌락 문화가 자녀들을 무수히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온갖 세속주의 인본주의 학문으로 자녀들을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끔 제공하는 피자 파티가 자녀들을 교회에 붙들어놓을 수 없습니다. 복음이 빠지고 재미 위주로 프로그램화된 VBS 여름성경학교가 자녀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자녀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가정과 목장과 교회가 함께 힘을 모아 싸워야 합니다. 욕망을 자극하며 쾌락으로 유혹하는 세상, 성공을 미끼로 던지며 자녀들의 영혼을 사냥하는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가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집에서 자녀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며, 우리의 창조주가 살아계심을 가르치십시오. 자녀들이 여러분을 따라 신앙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하십시오. 가족이 함께 모여서 가정예배를 드리십시오. 자녀들이 그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자녀들에게 보다 더 복음의 핵심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의 여러 말씀을 고루 전해야 하겠지만, 자녀들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구원을 얻는 것에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들과 교사들은 자녀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서, 우선적으로 복음을 반복하여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과거 목장 모임에서는 어린이들을 어른들이 올 때에 덤으로 따라오는 존재로 취급하는 경향이 다분했지만, 이제부터는 목장에서도 가정과 목장과 교회의 미래를 걸고, 어린이들을 목장의 일원으로 존중하고 구원을 얻어야 하는 소중한 VIP로 섬겨주시기 바랍니다.

올 하반기부터 어린이가 있는 목장에서는 자녀들을 축복하는 올리브 블레싱(olive blessing 시128:3)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목장 모임이 어른들만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어린이들과 함께 모이고 자녀들을 축복하고 그들에게 믿음을 전수하는 것이 목장의 최고의 목적이 되게 합시다. 자녀들이 살아야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삽니다.

기도원 진입로 보수공사를 위한 헌금

여러분은 한국 교회의 자랑스러운 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세계 여러 나라 목사님들을 만나보면 그들이 경험한 한국 교회의 특징은 ‘기도’라고 대부분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봐도 한국 교회는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산기도, 함께 모여서 부르짖는 통성기도 등 기도가 중심이 되어 부흥해온 교회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1880년대에 한국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한 이래로, 한국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1907년1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된 ‘성령 대부흥 운동’도 기도의 열매였으며, 그 이후 한국 교회는 백만구령운동을 일으키며 더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날도 과거 한국 교회가 가졌던 기도의 열정의 증거로 곳곳에 기도원이 세워져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지역에도 기도원을 허락하셨습니다. Scotts Valley에 있는 세계금식기도원은 최자실 목사님의 권유로 최종숙 목사님에 의해 1984년에 이곳에 세워졌습니다. 당시는 개인의 소유로 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하나님께 드려서 비영리 법인의 소유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포함하여 이 지역의 많은 교회들이 기도회나 수련회를 위해 이 기도원을 이용하고 있으며, 또한 많은 성도님들과 목사님들이 기도에 목마름이 있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이 기도원을 찾고 있습니다. 한인 교회들뿐 아니라 멕시칸 교회와 중국 교회들도 함께 이 기도원을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문지상에 보도된 것 같이, 이 기도원에 들어가는 하나밖에 없는 길이 지난 겨울에 내린 큰 비로 인하여 일부가 무너졌습니다. 다시 겨울 우기가 오기 전에 보수공사를 시급하게 해야 합니다. 공사비용이 120만불 이상 들어가는 큰 공사입니다.

지금 북가주에 있는 여러 교회들과 뜻 있는 성도님들이 함께 보수공사를 위한 기금을 모금하고 있고, 누계를 크리스천 타임스를 통해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동참하려고 합니다. 참여하기 원하시는 성도님들은 본당 로비에 준비된 “금식기도원 돕기 헌금” 봉투를 가져가셔서 다음 주일 9월17일에 교회로 지정헌금을 하시면, 합하여서 바로 기도원에 전달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금식기도원을 꼭 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인 교회들이 계속 기도하는 교회로 남아있도록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곳은 많은 교회와 성도님들이 찾아가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영적 전쟁의 산실이며, 이 지역에 있는 모든 교회들의 생명의 맥박을 뛰게 하는 기도의 심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 교회는 금식기도원에 올라가서 산상기도회를 갖습니다. 오늘 3부 예배 후 1:30에 주차장에서 출발하며, 기도회는 2:30에 시작됩니다. 자녀, 조국, 미국, 나라를 위해 기도하실 분들, 몸의 질병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는 분들, 영적으로 답답함이 있거나 성령충만을 사모하는 분들은 함께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KAPC 교단 소속입니다.

어떤 성도님이 익명으로 “우리 교회가 동성애 문제가 있는 PCUSA 교단 소속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셔서 이 글을 씁니다. 우리 임마누엘장로교회는 KAPC(Korean American Presbyterian Church)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창립된 이후 우리 교회는 지난 37년간 단 한번도 PCUSA 교단에 소속되었던 적이 없습니다.

KAPC 교단은 총신을 졸업하고 합동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목사님들이 주축이 되어 미국, 캐나다, 남미에 있는 한인교회들을 모아 1978년2월8일에 설립한 교단이며, 현재 30 노회, 650 교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담임목사인 저의 신학 배경을 묻는 성도님도 계셔서 말씀드리면, 저는 서울 사당동에 있는 총신을 79회로 졸업하고 합동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유학을 와서 Westminster Seminary에서 공부하던 중 청빙을 받아 지금까지 임마누엘장로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Westminster는 세상과 타협하며 세속화의 길을 걷는 신학을 거부하면서, 성경의 절대권위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얼마 남지 않은 신학교들 중에 하나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무오함(inerrancy)과 절대권위(absolute authority)를 지키고,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겸손히 순복하며 그리스도의 신부로 교회의 거룩함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교회와 함께 여러분도 진리를 떠나 세상에서 방황하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데 기도와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교육부는 최고의 선교지입니다.

그 동안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사랑으로 섬겨주신 교사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여러분의 섬김을 통해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람들로 자라가고, 그들 중에 모세나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민족의 지도자들이 나오고, 베드로와 바울 같은 뛰어난 복음 전도자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교육위원회에 의하면, 새 학기를 맞이하며 교사들이 많이 부족합니다. 유치부(3-5세)에 남자 교사 2분, 여자 교사 3분이 필요하며, 초등부(3-5학년) 10시 예배와 11:45 예배에 각각 남자 교사 1분씩 필요하고, 중고등부(6-12학년) 10시 예배에 남자 교사 2명, 여자 교사 8명이 필요하며, 수요일 오후에 교회 인근 George Mayne Elementary School에서 방과 후에 섬기는 Kids Club에 남자 교사 3명, 여자 교사 3명이 필요합니다.

기도하신 후에 많은 분들이 즐겁게 자원하시면 좋겠습니다. 문의나 지원을 하기 원하시는 분들은 유치부의 경우 송호영 전도사님 (408-316-2558), 초등부 김수예 전도사님(949-372-5225), 중고등부 김승균 목사님(831-236-1415), Kids Club은 정은하 집사님(650-906-2439)께 연락주세요. 여러분의 섬김을 통해 자녀들이 디모데처럼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딤후3:15). 교육부는 최고의 선교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즐기고 계십니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여러 등급의 학교들이 있고, 분야별로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가르치는 다양한 학교들이 있고, 또한 요리, 미용 등 온갖 기술학교, 직업학교들이 무수하게 있지만, 이 모든 학교들 중에 최고의 학교는 바로 성경학교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학문과 능히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진리, 절대 진리를 성경을 통해 배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처럼 저도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몇몇 학교를 다녔지만, 제가 경험한 최고의 학교는 단연 성경학교입니다. 물론 시설과 규모에 있어 세상 학교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고, 강사진들도 많이 부족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이 가진 고귀성 때문에, 또한 성경을 통해 배우는 진리의 절대성 때문에 성경학교는 여전히 변함없는 최고의 명문학교입니다.

성경학교 가을학기가 이번 9월12일 화요일 저녁7:30에 개강예배를 드리며 시작됩니다. 안내 간지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보시고, 여러분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이 최고 명문학교에 등록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2017년 가을을 가장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참여하셔서 성경을 배우며 그 말씀을 통해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교제하며 자라가시기 바랍니다.

담임목사로서 제가 부목사님들께 무엇보다도 ‘목회를 즐기라’고 종종 권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백성을 섬기는 것만큼 더 즐거운 것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책임은 무겁지만, 그 책임을 넘어서는 한없는 은혜와 기쁨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가 지난 25년 동안 탈진하거나 지치지 않고 목회를 해올 수 있었던 이유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소요리문답 1번에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여러분은 하나님을 즐기고 계신지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신앙생활보다 더 즐거운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김연아, 조성진, 이세돌 등 각 분야에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모두 하나 같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그의 분야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즈음 기도하며 또한 성경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부목사님들과 함께 탁구를 치는 시간보다 더 즐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좋아하시는 어떤 스포츠나 게임, TV 연속극보다 하나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즐거우신가요? 이번에 성경학교에 등록하고,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그분을 더욱 알아가는 삶을 즐깁시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 곧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벧전1:23, 2:2). 이번 학기에 지상 최고의 학교, 성경학교에 등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며 자라갑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백성을 섬기는 삶이 즐거워질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삶입니다.

부목사님들이 곁에 계십니다.

8월 말이 되면 저희 교회가 성도님들의 거주 지역을 5 평원으로 구분하고, 부목사님들로 하여금 한 평원씩 맡아서 섬기도록 한지 만 1년이 됩니다. 그 동안 많은 가정들을 맡아 기쁨으로 섬겨주신 부목사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부목사님들의 담당 지역을 다시 말씀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조종연 목사님 (408-568-2266, josephcho@kepc.org)
산호세 평원(San Jose 시 전지역, 95129 제외)

박성호 목사님 (408-908-8762, sunghopark@kepc.org)
북부 평원(Santa Clara, Sunnyvale)

김인환 목사님 (415-419-6322, inhwankim@kepc.org)
서부 평원(Palo Alto, Los Altos, Mt. View, San Mateo 지역)

박기한 목사님 (415-450-5824, kihanpark@kepc.org)
남부 평원(Cupertino, 95129, Campbell, Saratoga 지역)

이영기B 목사님 (339-440-2696, youngkilee@kepc.org)
동부 평원(Fremont, Milpitas, Hayward, Pleasanton 지역)

목장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성도님들은 앞으로도 계속 심방, 성경에 관한 질문, 신앙 상담을 포함하여 모든 상담, 개업/이사/돌 예배 등 무엇이든지 신앙과 관련된 일이 있으시면, 거주하시는 지역 담당 부목사님께 전화하거나 이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친절하고 따뜻하게 섬겨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목장에 소속하신 성도님들은 부목사님들께 연락하기 전에 먼저 목자/부목자님과 의논을 하시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하시면 목자/부목자님이 직접 해결하시기도 하고 담당 부목사님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실 것입니다.

부목사님들은 여러분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거의 매일 2시간씩 기도하고 계십니다. 또한 여러분과의 교제나 도움 요청을 기다리고 있으니, 연락을 주시면 언제든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기쁘게 달려가서 여러분을 섬겨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65세 이상 부모님들은 이에스더 전도사님(408-205-5184, estherlee@kepc.org), 청년들은 이산돌 목사님(408-402-1237,sandollee@kepc.org), 선교에 관한 상담이나 문의는 이수복 목사님(408-891-0454, sooboklee@kepc.org), 여성분들의 상담은 김혜경 전도사님(408-309-2958, haekyungkim@kepc.org), 장애아동을 위한 도움요청과 상담은 서경의 전도사님(650-714- 6090, kyunguisuh@kepc.org)께 연락주세요.

저는 장로님들과 함께 교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일과 주일예배에 집중하고, 수요예배와 노부모님들의 천국환송예배는 제가 계속 섬기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사무실에 있는 동안에는 늘 문을 열어놓고 있으니, 저의 기도나 상담을 꼭 원하시면 언제든지 오셔도 됩니다.

이영기 목사 인사드립니다.

이영기 목사

할렐루야! 여러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로서 임마누엘 장로교회 부임한지 2주가 되었습니다. 2주 전만 해도 남의 교회였던 임마누엘 교회를 이제는 우리 교회라고 부를 수 있게 되서 참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목사와 성도의 관계가 결혼생활과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기대하고 남편은 아내의 존경과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좋은 성도, 좋은 목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희생과 인내로 어려움을 극복해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부임 첫 날에 손 목사님께서 성도들을 사랑하며 즐겁게 목회하라고 권면해 주셨습니다. 여러분과 즐겁게 생활했으면 좋겠습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친밀한 관계를 기대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제 자식은 사랑합니다. 마찬가지로 목사는 태생적으로 성도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여러분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은 객관적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그분이 떼어주시는 살과 피를 먹고 삽니다. 죽어서 가는 내세적인 천국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에 임하여 있는 현세적인 천국을 날마다 체험하는 신앙이 돼야 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를 배워가는 신앙의 동반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저에게는 아내와(이선하) 두 아들이(종현, 종하) 있습니다. 아내는 아직 캔자스 집에 있고 9월 말에 이주할 계획입니다. 큰 아들은 시카고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입학 준비 중입니다. 작은 아들은 올해 시카고 미술 대학에 입학하여 어제 시카고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미국에 온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주일학교부터 교회 출석을 했지만, 믿음이 없다가 미국에 와서 예수님을 만나 선교사로 헌신하여, 연변과기대에서 3년간 사역했고, 다시 미국에 와서 고든콘웰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장로교 목사가 되었습니다. 보스턴, 뉴욕, 캔자스에서 사역했습니다.

임마누엘 교회에 와서 고등학교 때 같은 교회 출석했던 친한 형을 35년 만에 만났습니다. 옛날처럼 반말로 대화를 나누니 참 좋았습니다. 임마누엘 교회 성도님들의 숫자가 많지만, 저는 여러분 모두를 친구로 만들고 싶은 욕심입니다. 제가 이름과 얼굴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찾아와 주시고 또 제가 심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곁에 항상 있는 목자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의 만남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십니까?

3주 전에 어느 목자님 내외분을 만났는데, 부목자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자신이 우리 교회에 처음 와서 첫 예배를 드릴 때에 손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조용해서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 주일부터는 뜻밖에 설교가 소중하게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성도님이 딸 때문에 산호세로 이주하여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새가족 환영회로 저희 집을 방문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전에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 재미 있었는데, 새로 듣는 손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 밋밋하여 6개월간을 졸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에 설교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 계속 그렇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곳에 방문교수로 오셨던 어떤 의사 분이 저에게 남기고간 편지에 의하면, 그는 “기독교를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하고,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불교를 근 45년간 믿”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어떤 목자님을 만나 목장을 방문하게 되고, 거기서 따뜻한 섬김을 받으며 마음이 열려서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첫 시간부터 말씀이 들려서, 그의 표현에 의하면 “뭐에 홀린 듯” 주일마다 1부 예배를 드리다가 결국 2016년 1월에 세례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설교를 5년, 10년 이상 듣고도 별 변화가 없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제 아내의 말에 의하면, 설교 시간에 조는 분도 많고,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며 앉아계신 분들도 많으시니까요. 반면에 예배가 끝나고 나오는 시간에 눈에 눈물이 글썽하거나 눈이 벌개져서 쑥스러워하며 나오시는 성도님들도 계십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는데,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나올까요?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 차이는 설교를 듣는 마음 자세에서 나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고 쓰고 있습니다(살전2:13).

설교를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그 설교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말씀이 믿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기(at work) 때문입니다. 말도 느리고 표현력도 시원찮고 어눌한 저의 설교를 들을 때에, 여러분이 저를 바라보지 않고 그런 저를 세우시고 저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면,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여서 여러분을 변화시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기 원하십니까? 오직 하나 설교자가 사람의 말을 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만 한다면, 믿음으로 그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기도시간에도 만나주시고 선교현장에서도 만나주시지만, 그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시간에 가장 흔하게 만나주십니다.

지정헌금은 이런 헌금입니다.

지정헌금은 말 그대로 헌금을 드리는 성도님이 수혜 대상을 직접 지정하여 드리는 헌금입니다. 주보 헌금통계에 있듯이, 우리 교회 지정헌금에는 선교사님이나 선교단체를 위해 드리는 선교 지정헌금,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돕기 위해 드리는 구제 지정헌금, 그리고 선교나 구제가 아닌 다른 명목으로 지정하여 드리는 일반 지정헌금 등 3 종류가 있습니다.

최근 몇 주 동안 헌금이 많았던 이유는 성도님들이 평소처럼 드린 여러 헌금들 외에, 새빛 맹인 선교회 맹인들이 예배를 드릴 예배당 건축을 위해 드린 헌금, 캄보디아에 미션 스쿨 건축과 선교병원을 위해 드린 헌금, 그리고 인도에 예배당 겸 선교센터 건축을 위해 드린 헌금 등 선교 지정헌금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소득의 십일조나 주정헌금을 드린 후, 주님께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선교헌금, 구제헌금, 감사헌금 등을 드릴 때에 특별히 원하는 수혜 대상이 있으시면, 헌금봉투에 그 대상의 정확한 이름과 계좌를 기록하여 드리시면 됩니다. 가족의 생일, 부모님의 팔순, 자녀들의 결혼 등을 하나님 앞에서 기념하거나 감사하면서 지정헌금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전에 우리 교회는 가족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우리 교회는 한 가족입니다. 하나님을 한분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교회의 식구가 늘어가면서 예전의 친밀했던 가족의 모습이 어느덧 조금씩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교회 식구들이 자녀들의 이름까지 서로 다 잘 알았습니다. 교회 식구 중에 누가 아프면 온 교회가 다 함께 아파했고, 고난주간에 특별기도회로 모이면 거의 전 교인이 함께 모였습니다. 교회 부모님들은 다 내 부모님이셨고, 교회에 자녀들은 다 내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부모님들을 함께 즐겁게 섬겼고, 자녀들을 함께 양육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도 종종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 교회가 자꾸 제도화되고 기업화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교회의 규모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회복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마주칠 때에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오늘 함께 예배를 드리는 분들이 모두 내 가족이며,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함께 살아갈 영원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토요일에 광복절 기념 북가주 교회간 친선 배구대회가 있는데, 참석하여 즐겁게 응원도 하고 성도의 교제도 나눕시다. 예전처럼 지원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서 매년 6-7팀이 출전하고, 전교인이 참석하여 응원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산돌 목사

탄나지아에는 ‘하얀 흑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백색증 환자들인데 백색증 환자의 신체를 지니면 부자가 된다는 미신 때문에 팔과 다리를 잃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2만 명중 1명꼴이지만 탄자니아에는 그 비율이 1,400명당 1명꼴로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백색증 환자의 팔 하나는 한국 돈으로 220여만 원, 시신 한 구는 8,300여만 원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백색증이 걸린 어린 탄자니아 아이들은 상당히 위험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끌려가서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구분 짖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을 대할 때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지역과 학교와 취미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 중 하나가 신앙생활의 경험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기존의 신자를 편하게 생각하고 또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교회를 경험한 분들이나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거나 신앙생활을 접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늘 부담스러움을 가지기도 합니다.

민수기 1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운 땅에 들어가서 드려야 할 모든 규례에 타국인도 동등하게 그 규례를 지켜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민15:14-16, 26, 30)
이스라엘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들에게까지 동일하게 규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고를 칠까봐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 반하는 것들을 조장하거나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 두려웠다면 그들에게만 국한되는 특별법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며(15절)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된다”고(16절)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닌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양이라 칭하고 동일한 보혈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1절을 보면 바리새인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는 “주님 저는 난민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주님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주님 저는 흑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와 동일한 기도가 아닐까요? 하지만 결국 바리새인은 의롭다 칭함을 받지 못합니다.(14절)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만나고 얼굴을 대하는 모든 이들의 영혼을 보기 원합니다. 구분 짖지 말고, 편견을 갖지 말고, 불편해 하지 말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며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묵상하며 삶에서 행함으로 한 영혼을 진실되게 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증거 없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증거가 있어야 믿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도 없이 믿을 수 있느냐”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크리스천들은 증거 없이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며 ‘무식하게’ 믿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실존을 믿을 수 있도록 셀 수 없이 많은 증거들을 주셨습니다.

20세기 최고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인생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에는 두 가지 삶 밖에 없다. 한 가지는 기적은 없다고 믿는 삶이고, 다른 한 가지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이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왜 모든 것이 기적일까요? 그것은 우주와 만물이 모두 우리의 능력과 이성을 뛰어넘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라는 찬송 가사가 있지만, 실상은 눈에 보이는 만물이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실존을 선포하는 증거들입니다. 미세한 원자, 분자세계의 초정밀한 균형으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광대한 우주의 질서와 조화에 이르기까지 만물이 하나 하나 모두 창조주가 살아계심을 입증합니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생명을 신비하게 지으시고 유전자 코드(DNA Code)를 설계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실재를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대폭발(Big Bang)을 통해 ‘우연히’(by chance) 생명체가 만들어질 확률은 맹인이 오대양 육대주에 셀 수 없이 많은 모래 중에서 정해진 한 알의 모래를 찾는 것보다 힘들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상 불가능한 것을 숫자로는 가능하다고 부득부득 우기는 고집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창조주를 믿지 않는 것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믿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주인 되어 살던 삶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고귀한 자존심이 이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계시지 않다고 무조건 전제하고, 보이는 물질세계가 전부라고 주장하며, 자연과 과학의 사실들을 가지고 오히려 그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공격하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의 날을 정해놓으셨습니다(행17:31). 인류 모두에게 죽음과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히9:27). 그 날에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했다”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이 화가의 실존을 증거하듯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이 그를 증거하기 때문입니다(롬1:20).

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의 실존을 증거하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담겨있고,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증인들의 증언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 죄를 지고 대신 죽은 그의 아들을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습니다. 죽음과 심판이 닥치기 전에, 이 모든 증거들을 보고 듣고 회개하고, 부활하셔서 지금 여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살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