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물이 쓰게 느껴질 때

물이 쓰게 느껴질 때 (출15:22-27) - 박성호 담임목사

* 출애굽이 구원을 상징하는 사건이고, 홍해 사건이 신자의 세례를 상징하며, 광야 생활은 신자의 성화를,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영화로운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출애굽기는 우리에게 칭의, 성화, 영화의 구원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칭의와 성화에 관한 귀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광야와 같은 성화의 길에서 우리가 물이 쓴 연못을 만날 때 꼭 기억해야 할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1. 마라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곳입니다(v.22-23).
*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여정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종종 쓴 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은 원망하지 않고 기도합니다(v.24-25).
* “하나님께서는 단 물을 먼저 주실 수도 있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쓴 물로써 그들 속에 잠복해 있는 쓴 뿌리를 드러내고자 하셨다.” – 존 칼빈
* 성화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순종입니다

3. 마라가 이 여정의 끝이 아닙니다(v.27).
* 엘림은 분명 풍성하고 좋은 곳이지만 종착지는 아닙니다.
* 인생 속에서 우리는 엘림에서 보다 마라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본문에 따르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원망과 불평입니다.  현재 내가 경험하고 있는 나의 ‘마라’는 어디인가요? 하나님께서 이 과정을 통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2. 사람은 당연히 ‘마라’보다는 ‘엘림’에 머물기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엘림은 우리의 종착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엘림’이 어디인지 가르쳐 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해 보십시오.

형제의 찬송이 된 유다

형제의 찬송이 된 유다 (창49:1-12) - 박성호 담임 목사

* 창세기 49장은 야곱이 죽을 때가 다 되어 열 두 아들에게 남긴 예언의 내용입니다. 그 중 가장 강조된 부분은 유다와 요셉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그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넷째 유다는 왜 그런 것일까요? 다른 형제들에 비해 특별히 위대한 점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창세기를 읽는 독자들은 궁금해 합니다. 특별히 38장에 있었던 사건을 읽으며 더욱 그런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오늘은 왜 유다인가, 하나님은 왜 유다 지파를 다윗과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메시아 족보에 들어가게 하셨는가에 대한 묵상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소망의 메시지를 찾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A. 르우벤에 대한 예언(v.3-4)
* 부도덕함으로 인해 장자권을 상실합니다(창35:22)

B.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예언(v.5-7)
* 분노와 혈기를 죽이지 못해 살인을 저지릅니다(창34:24-25)

C. 유다에 대한 예언(v.8-12)

C-1. 유다는 이런 찬사를 받을 자격이 과연 있는가?(창38)

C-2.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왜?

* 공로 보다는 은혜의 원리가 작동합니다.
* 하지만 우리는 결정론적 숙명론에 빠지면 안됩니다. 레위지파를 볼 때 하나님은 회개하는 이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민35:2-3; 수21:41)
* 결국 우리의 입에서 찬송이 터져 나올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끌고 가십니다(창29:35).

13년 후

13년 후 (창17:1-19) - 박성호 담임 목사

* 성경은 다양한 이민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부르심을 따라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 정처 없이 떠났던 아브람은 모든 이민자들의 선조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선포된지도 어느덧 24년이 지났고 겨우 태어난 아들 이스마엘도 이제 13세가 되었습니다(16:16). ‘이만하면 됐다’ 싶은 그의 체념을 아시는 듯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다시 찾아와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2024년 새해에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이스마엘로 만족하지 말라
* 지치고 체념할 만한 때에 다가와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새해가 되십시오.
* 하나님의 약속과 부르심에는 실수가 없습니다. 예비하신 그 시간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2. 신분과 지위가 바뀌었음을 기억하라
*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개명하시는 하나님
* 예수 안에서 우리의 옛 자아와 옛 모습이 떠나갔음을 선포하는 새해가 되십시오.

3. 하나님 앞에 겸손히 구별된 존재임을 기억하라
* 우리 모두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누리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이 되었습니다.
* 핵심은 마음에 할례를 받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신30:6; 롬2:28-29).

적용을 위한 질문:
1. 응답이 너무 지체되어 마음에 묻어두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십니까? 오늘 말씀은 나에게 어떤 마음을 다시 일깨워 주시나요? 새해에 하나님 앞에서 체념하지 말아야 할 약속이 있다면 노트에 기록해 봅시다.
2. 새해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더욱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게 살아야 할 삶의 영역은 무엇입니까?

방황하지 말라

방황하지 말라(창4:16-26) - 박성호 담임 목사

* 창세기를 읽으며 함께 성경통독의 해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는 1-14장까지 읽게 됩니다. 불행한 한 집안의 족보를 마주하는 오늘 4장 본문은 독자들에게 매우 씁쓸한 감정을 남기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에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들을 조명하며 새로운 한해를 주님과 어떻게 동행할지 결단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 하나님의 임재를 스스로 떠났던 가인
*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Cain went away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떠나 살아가던 가인의 곁에 여전히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은 가인이었습니다(4:6,9,10).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신다는 생각은 우리의 오해입니다. 자연수명을 잘 마치는 것이 축복입니다(4:15; 3:22-24).

2. 화려했지만 상처와 분노를 극복하지 못했던 폭군 라멕
* 일부다처제의 원조(4:19), 예술과 과학의 원조가 되는(4:20-22) 축복의 남자?
* 아버지에게서 이어지는 폭력을 절제하지 못했던 그의 아픔이 시로 표현됩니다(4:23-24).

3. 미약했지만 바른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던 에노스
* 셋의 아들 에노스라는 이름은 ‘약함’이라는 뜻입니다.
* 인간의 약함을 인식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의 삶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적용을 위한 결단:
1. 새해에는 화려한 자리에 머물기 보다 미약하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소박한 자리를 찾아 가십시오.
2. 매일 주어진 성경 말씀을 읽고 15분 이상 묵상하며 오늘 말씀하시는 교훈을 찾는 습관을 가져 보십시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 (마 1:21-25) 박성호 담임 목사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을 기념하는 복된 성탄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땅에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을 소개하는 두 개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 하나는 ‘예수’(21절)이며 다른 하나는 ‘임마누엘’(23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해 주신 이 귀한 이름에 담긴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함께 묵상하며 그 이름 속에 담긴 진리를 삶에 적용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v.21)
*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간에게는 진정한 평강이 없습니다.

2.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v.23)
*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분의 징조(sign)를 구하지 않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가장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셨습니다(사7:10-14).
*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You are with me)의 은혜를 체험하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시23:4; 마28:19-20).

적용을 위한 질문:
*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야 할 분이 나의 주변에  계신지요? 새해에 그분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어떤 결심을 가지셨나요?
* 2023년에도 나와 함께 동행해 주셨던 하나님의 이야기를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감사와 찬양으로 이번 주를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포로된 땅에 보내심을 받은 우리

포로된 땅에 보내심을 받은 우리 (왕하5:1-8) - 박성호 담임목사

* 선교학자 레슬리 뉴비긴이 35년간의 인도 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74년, 자신의 조국 영국교회가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선교지’와 같은 상황이 되었음을 보고 그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의 미국이나 한국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냉철한 시각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급변해 가는 상황 속에서 서구 사회는 이른바 ‘Post-Christendom’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2023년,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주님의 명령은 어떻게 다가오셨지요?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소녀의 모습처럼 원치 않게 타국의 포로로 잡혀와 소수자로 비주류의 삶을 살아가는 듯한 애처로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포로된 땅으로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십니다. 이러한 부르심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삶의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본문 속에서 주시는 주님의 지혜를 함께 찾아 봅시다.

1. 사람들은 여전히 목마름과 아픔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 문명의 풍요로움에 관계 없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목마름이 사람에게 있습니다(v.1).
* 우리의 형편이 궁색해도 복음에는 능력이 있음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2. 신실하고 겸손하게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음 전할 기회를 주십니다
* 일상의 삶에서 ‘신실한 현존’(faithful presence)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v.3; 렘29:7; 행27:20-25; 빌1:12-13; 창40:6-8; 벧전3:15).

3. 나의 언어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로 다가가야 합니다
*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다가가는 성육신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고전9:22).
* 흩어진 소수자의 삶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십시오(행2:4-8; 창1:28; 계7:9-10).
*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면 세상은 절대로 치유될 수 없습니다(v.6-7).

적용을 위한 묵상:
* 서구사회에서 이제는 비주류의 잔치가 되어 버린 듯한 성탄절을 맞이하는 당신의 마음에 주님은 오늘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가요?
* 일상생활 속에서 ‘신실한 현존’을 실천하기 위해 다짐하는 새해의 결심을 세가지만 적어 봅시다.

여호와를 찾으라

여호와를 찾으라(습2:1-3)-이산돌 목사

스바냐가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히스기야 왕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로 생각되며 예레미야 초기 때와 요시야 왕이 있을 때 아직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지 않은 때인 기원전 640-20(요시야의 종교개혁 621년)년경에 사역을 했습니다. 이 당시에 선지자 나훔, 하박국, 예레미야, 훌다가 같은 시기에 사역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시대에 많은 선지자가 나타나고 동일한 메세지를 선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고 그 날이 임할 것임을 말하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 성경은 그 날, 즉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많은 곳에서 말씀하십니다.
- 구약의 선지서들
- 복음서들 (마24장, 막13장, 눅21장)
- 서신서들 (벧후3장, 요한계시록)
스바냐 1장은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열방에 임할 심판에 대해서 ‘여호와의 날’이라 사용하며 그 긴급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1:7, 14, 15, 18)

2. 다가오는 그 날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 1절에는 두 개의 반복되어지는 명령형 동사 ( 모일지어다 )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는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1:6, 12)
- 2절은 ( 전에 )라 말하면서 모이기 위한 데드라인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날은 반드시 도래합니다. 그러므로 아직 늦지 않았음을 알고 그에 응하여 일어나 움직여야 합니다.
- 3절은 모인 자들에게 ( 찾으라 )라는 명령어를 세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이 오직 그 명령을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찾는 것은 그 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날에 숨길 수 있고 지킴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적용
1. 대강절 특별기도회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2. 2024년 성경통독을 위해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3. 겸손을 통해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신실하나 쓸쓸한 이들의 찬양

신실하나 쓸쓸한 이들의 찬양(눅1:67-79) - 박성호 담임목사

* 성탄 시즌에 자주 등장하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두 복음서가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우리는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속에서(눅1-2장) 네 그룹의 찬양을 기록합니다. 마리아의 찬양(눅1:46-55), 사가랴의 찬양(눅1:68-79), 천사들의 찬양(눅2:14), 그리고 시므온의 찬양(눅2:29-32)이 그것입니다. 마리아와 사가랴, 그리고 시므온의 삶을 요약한다면 그것은 ‘신실하나 쓸쓸한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기독교가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나 버린 오늘처럼,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이들의 삶은 세상으로부터 종종 소외되고, 외롭고 쓸쓸한 삶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그런 이들에게 한줄기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더 이상 성탄절에 환희를 느끼지 못하는 분들이 다시금 찬양을 회복해야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본문 속에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누려 봅시다.

1. 우리를 돌보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v.68-71).

2. 오랜 약속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v.72-75).

3. 주께서 이루신 구원의 결과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v.76-79).

적용과 숙제:
1. 올해 성탄절을 맞이하는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어린 시절의 빛 바랜 추억으로만 성탄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2. 신실하나 쓸쓸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여전히 찬양할 이유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대강절 특별기도회에 함께 참여하며 한 해를 감사의 기도로 마무리하세요.

중년의 시간을 아름답게

중년의 시간을 아름답게(시102:1-13, 23-28) - 박성호 담임목사

*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는 우리 사회 속에서 ‘중년’의 자리는 참 애매하고 규정하기 힘든 인생의 중간 지점입니다. 청소년기의 ‘사춘기’에 견주어 인생의 ‘사추기’라 이야기하는 중년의 인생에서 인간은 여름을 보내고 가을과 겨울을 맞이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지면서 ‘중년’의 나이를 이제 70대까지도 규정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기나긴 중년의 시기를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중년의 시간을 인생의 위기로 생각하지 않고 아름답게 잘 보내기 위해 성도들이 가져야 할 마음을 말씀 속에서 살펴 봅시다.

1. 나에게 찾아오는 노화에 저항하지 않고 적응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1-7절).
* 육신의 변화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 정서적인 불안감과 허무함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2. 인생의 후반전에 경험하는 관계적인 어려움을 잘 풀어나가야 합니다(8-11절).
* 마음에도 주름살이 있듯이 쉽게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웃을 용서하고 용납해야 합니다(삼하16:5-11)

3.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12-13, 23-28절).
* 인간의 감정은 기복이 심하고 변덕이 많지만 하나님은 전혀 그렇지 않은 분이십니다
* 자신의 한계를 바라볼 수록 하나님이 더 위대하게 보여야 합니다

적용과 숙제:
1. 올 한해 내 몸의 건강을 위해 애썼던 것처럼 내 마음과 영혼이 쇠약해지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나요? 내년에는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아가시겠습니까?
2. 성경통독의 해 2024년을 준비하면서 말씀 속에서 삶의 기쁨을 찾아갈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시간이 되십시오. 대강절 특별기도회(12/11-23일)에 참여할 시간을 만들어 놓으십시오.

이렇게 감사합시다

이렇게 감사합시다(눅12:22-34) - 박성호 담임목사

* 2023년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함께 예배 드리는 오늘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떤 감사의 열매로 나아가시는지요? 우리의 감사가 형식적인 연중행사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감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MRI 검사로 인체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 보듯이 자신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우리는 면밀히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 의식주의 문제로 너무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라고 하십니다(v.22-30).
*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관심을 받으며 돌보심을 받고 있는 귀한 자녀들입니다.
* 염려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하나도 도움되지 않습니다(25,29;빌4:6-7; 벧전5:7).

2.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 있음을 감사하라고 하십니다(v.32-34).
* 우리는 세상과 비교해 보면 적은 무리(little flock)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겨자씨 같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감사하세요(32; 눅13:18-21).
* 소유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고 가진 것을 어떻게 베풀며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적용과 숙제:
1. 추수감사절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식사하며 올 한해 가장 감사했던 것들을 진솔하게 나누어 보십시오.
2.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난 후 인생을 살아가는 나의 관점이(의식주 문제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혹은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지 나누어 보십시오.
3. 구제와 선교에 나의 재정이 얼마나 사용되고 있는지요? 새해에는 ‘낡지 않는 배낭’(33절)을 하나씩 만들어 보십시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요6:48-59) - 박성호 담임목사

*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밥 먹고 사는 일에 큰 관심을 두고 살아 갑니다. 물론 예전만큼 밥을 챙겨 먹는 시대가 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우리 시대는 ‘잘 먹고 사는 법’- 경제 문제에 모든 관심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I am the bread of life)는 말씀으로 도전하십니다. 주께서 마련하신 성찬의 자리에 나아가는 우리가 기억하며 붙들어야 할 진리는 무엇일까요? 말씀 속에서 주시는 소중한 교훈을 함께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생명의 떡은 세상살이를 잘하기 위해 먹는 떡이 아닙니다(v.49-50; 요6:26).
* 신비로운 경험에 머물러 있는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의 순간들이기 때문입니다.
*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께로 가야 합니다. 믿음은 ‘이동’하는 것입니다(요6:35).

2.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먹고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v.53-58).
* 은유적인 표현에 담긴 주님의 참된 의도를 읽어내야 합니다(출12:6-8,13-14).
* 우리의 믿음은 먹고 마시는 것처럼 개인적이며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 성찬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연합의 소중함을 떠올리는 시간이며 또한 자신의 삶을 살피고 돌아보는 시간입니다(고전11:28-34).

*적용을 위한 묵상:
1. 나에게 먹고 마시는 일상이 매우 자연스럽듯이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시간이 자연스러운지요?
2. 오늘 성찬의 자리에 나아가며 내가 살피고 돌아보아야 할 주변의 이웃들은 누가 있나요?

하나님도 일하실 수 없는 이유

하나님도 일하실 수 없는 이유(마13:53-58) - 조종연 목사

*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기적들
선교지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들이 왜 이곳에서 일어나지 않는가?

*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예수님(막6:1-6,눅4:16-27)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마13:55a, 56a)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막6:5-6a)

1. (익숙함)이 신앙의 함정이 되지 않게 하라
-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도 기적 행하기를 요구하는 고향 사람들 (눅4:23-24)
- 익숙함이 사람으로 하여금 영적인 기대를 하지 않도록 막아선다

2. 예수님을 (존중) 하는 자가 되어라
-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without honor), ἄτιμος- 흔하다, 평범하다, 천하게 취급하다 (고전4:10)
- 존중은 마음의 문제이다. 사29:13
- 예수님을 존중한 자가 받은 축복 막14:6-9
- 아버지를 존중하는 방법은 아들을 존중하는 것과 그 아들이 보낸 하나님의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마10:40-42
- 대제사장 엘리와 한나(삼상 1장)

3. (믿음)을 더하라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마13:58
- 눅4:25-27
-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들이 많다.
-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지가 하나님에 대한 내 믿음을 드러낸다.
- 믿음이 하나님을 일하시게 한다.

적용과 숙제
* 익숙함에 젖어있는 신앙 자세를 돌아보고 회개하기 예배 드릴 때 집중해서 참여하고 말씀 듣기
*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을 존중하기를 연습하기, 홈리스를 위한 생활용품 도네이션 참가하기
* 다음주에 시작될 사역 박람회, 내년도 자원 봉사 사역을 위해 한주간 기도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반응하기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마25:31-46) - 박성호 담임목사

*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 하나는 구원론이며 복음이 말하는 구원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은혜’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의 선행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줍니다. 표면적으로 읽으면 마치 연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섬기고 환대할 때 영생을 얻게 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영벌을 받게 된다는 것처럼 읽힙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본문 속에서 주시는 주님의 교훈을 찾아 봅시다.

1. 선행과 환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 로마서는 믿음의 뿌리, 야고보서는 믿음의 열매를 다룸으로써 균형을 이룹니다.
* 진짜 믿음은 빈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약2:14-17, 24; 마7:17-20).

2. 선행과 환대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삶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 환대는 타인이 내 삶에 들어올 여유와 공간을 내어주는 행동입니다(마10:40-42).
* 오른편과 왼편에 있는 자들이 똑같은 말씀에 다르게 반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37-39절  vs. 44절)
* 진정한 환대는 되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을 향한 것이어야 하며 교회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을 때 교회는 타락하지 않았습니다(눅14:12-14; 행6:1-7).

적용을 위한 질문:
1.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lifestyle)은 ‘양들의 방식’과 ‘염소의 방식’ 중에서 어느 면에 더 가까워져 있습니까?  정직하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진단해 봅시다.
2. 교회가 가난하고 되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려면 우리가 어떤 면에 더 마음을 많이 써야 할까요? 

사귐의 공동체

사귐의 공동체(요일1:1-4) - 박성호 담임목사

1. 하나님처럼 우리에게도 관계가 필요합니다. (창1: 26-27; 요1:1-3; 창2:18)

2. 그런데 죄로 인해 참다운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으며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창3:12; 4:8; 롬5:10)

3. 하나님은 우리와 주님 사이에 회복된 평화를 누리며 동시에 확장해 가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십니다. (고후5:19; 요일 1:3)

* 그러므로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샬롬의 평화를 누리며’(사귐koinonia), 동시에 그 ‘샬롬의 평화를 확장해 가기 위해’(선교Mission) 존재하는 것입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1. 우리의 교회 생활에는 선교 지향적인 면이 배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점에서 그렇다고,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느끼시는지 생각해 봅시다.
2. 우리의 교회 생활은 모든 면에서 성도 간의 사귐이 중점적으로 강조되고 있나요?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 Going Deeper: 박영호, “다시 만나는 교회”(서울: 복있는 사람) p.23-44

그 사랑

그 사랑 - 로마서 15(롬8:28-39) - 박성호 담임목사

*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받는 로마서 8장이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러분들이 가장 사랑하는 성경말씀은 몇 절인가요? 28, 32, 35, 아니면 38-39절인가요?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귀한 말씀 속에서 우리는 위로를 얻고 소망을 가지며 다시 감격에 젖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7절 말씀을 참 사랑합니다. 특별히 “넉넉히 이기느니라”(We are more than conquerors)는 표현에 늘 감격스러워 합니다. 단순한 성공이나 승리 이상의 더 고귀한 가치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심겨졌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한 승리란 무엇일까요? 본문 속에서 주시는 은혜를 붙들고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갑시다.

1.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키신다고 약속하기 때문입니다(v.28-30).
+ The Golden Chain of Romans: 미리 알다, 미리 정하다, 부르다, 의롭다 칭하다, 영화롭게 하다

2. 귀한 아들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편에 계신다고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v.31-34).
+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버려진 듯 보였으나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하나님 손 안에 계셨다면 우리도 또한 그분 손 안에 있습니다.

3. 세상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약속하기 때문입니다(v.35-39).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은 17전 17승입니다.

* 진정한 승리는 십자가의 원리 속에 있습니다. 죽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죽어야 살고 져야 이깁니다. 인본주의의 삶은 일시적으로는 이기는 것 같지만 최종적으로는 패배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신본주의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진정한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이루어 집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그분 때문에 우리는 자유인이며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마귀에게 더 이상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우리는 약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승리자로서 강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벽에 붙어 있는 종이는 아무도 찢을 수 없습니다.

서로 귀히 여기는 사랑의 공동체

서로 귀히 여기는 사랑의 공동체(엡2:21-22) - 이돈하 목사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엡 2:21-22).  
믿음의 공동체가 더욱 하나되고 연합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귀하게 여기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 서로가 가진 차이로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2. 서로 귀하게 여기는 것은 허물이나 부족한 점을 비방하지 않고 (덮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3. 서로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세상은 결과보다 과정, 성과보다 사람, 이익보다 사랑, 속도보다 방향을 중시하는 교회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결론:
성도들이 하나되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약점을 덮어주고 사랑으로 섬길 때 천국을 견인하는 행복 가득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 (로마서 14)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 - 로마서 14(롬8:18-27)

* 그리스도인들의 실존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미 임하신 하나님 나라를 살며 아직은 완전하게 성취되지 못한 하나님 나라를 또한 갈망합니다. 이 세대와 오는 세대를 구분 지을 종말을 바라보며 긴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긴장 관계가 계속되는 한 우리에게는 ( )이 계속해서 찾아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영광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동반한 현실 속에서 탄식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가져야 하는(v.24-25)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v.26)

2. 성령님이 함께 탄식하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intercedes) 계시기 때문입니다(v.26)

3. 성령님이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v.27)

결론과 숙제:

* 그러므로 소망을 가지고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계속 기도하십시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그대로 하나님께 옮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금요일에 시작되는 말씀사경회 세번의 집회에 빠짐 없이 참여하십시오. 기도의 자리에 머물며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로마서 13)

성령님과 함께 걸어야 합니다 - 로마서 13(롬7:7-2) - 박성호 담임목사

“성경을 한 개의 반지로 본다면 로마서는 보석이고, 그중에서도 8장은 보석 중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초점과 같다” (필립 스패너, 루터교 경건주의 창시자)

* 우리가 사랑하며 극찬하는 로마서 8장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3주 동안 살펴볼 8장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영’(pneuma,성령)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서신에서 ‘영’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서신은 물론 로마서이며 31회에 걸친 언급 중 20회는 8장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성령 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성령님에 관한 어떠한 사실들을 증거하고 있는지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1. 성령님은 인격이시며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2. 성령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능력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v.1-2).
3.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v.3-4).
4.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v.16).

그러므로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v.17).

* 육신을 따르는 삶의 방식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육신이 지배하는 생각들이 교회 안까지 밀고 들어와 ‘고난’을 묵상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겪는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로마서 12)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 로마서 12(롬7:7-25) - 박성호 담임목사

1. 마음의 문을 열며
* 당신은 자신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며 살아가나요?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같은 이중적 모습에 번민하는 나
-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사용한 ‘simul iustus et peccator’(의인인 동시에 죄인) 말에 공감하는 나
- 가요 ‘가시나무’의 가사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는 나

2. 말씀의 씨를 뿌리며
* 바울이 7장에서 말하는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요?

- 본문에 등장하는 ‘나’는 크리스천 이전의 ‘나’인가, 아니면 이후의 ‘나’인가?
- 어떤 해석이 맞는가를 찾아가려면 이 부분에 기록한 바울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 ‘이미’를 강조하는 6장과 8장은 ‘아직’을 강조하는 7:14-25과 분리시켜 보아서는 안된다.
- 7:14-25를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하는 ‘나’의 원함(v.15,16,18,19,20,21)이다.

3. 삶의 열매를 거두며
*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어떻게 현재를 살아가야 할까요?

1. 외롭게 홀로 있음은 영적인 문제를 풀어가는 답이 결코 아닙니다. 죄는 공동체를 파괴시키고 ‘나’를 공동체로부터 홀로 있게 만듭니다. 죄와는 공동체가 함께 싸워내야 합니다(엡6:10-13).
2. 크리스천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음을 기억하십시오. 9회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3. ‘오호라’의 탄식이 있는 사람에게만 ‘감사하리로다’의 은혜가 따라옵니다(v.24-25).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탄식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오호라’의 탄식은 짧아야 합니다. 탄식의 순간에 예수님을 곧바로 바라보십시오. ‘감사하리로다’의 은혜로 얼른 들어가야 합니다.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로마서 11)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 로마서 11(롬6:15-7:6) - 박성호 담임목사

* 결혼이라는 언약 관계는 배우자의 유익을 위한 자발적인 사랑의 섬김이 있을 때에 온전히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관계도 이와 비슷합니다. 강제적인 요구로 상대방을 노예 삼는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으로 섬기는 자발적인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대속 사역(6:3-10)을 통해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난 우리가 오늘 본문 속에서 붙들어야 할 교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1. 새로운 법적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v.14-15).
*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게 되었습니다.
* 우리를 다스리고 지배하던 죄의 능력이 무력하게 되었습니다.

2. 주종 관계의 주인이 죄에서 하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v.16-18).
* 죄에게 순종하던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 ‘의의 종’이란 곧 ‘하나님께 종’이 되는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목적이 분명하게 되었습니다(6:19, 22; 7:4).
* 하나님이 자신의 종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거룩입니다.
*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삶은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는 우리 모두에게 주신 숙제입니다.

* 적용과 숙제:
1. 요즘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좀 어떠신가요? (강제적인 의무 관계, 혹은 자발적인 섬김 관계에 있는지 정직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룩의 열매를 맺으려면 오직 한가지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 가야(belong to)합니다(7:4). 내가 예수님과 어떻게 연합(요15:4-5)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는 시간을 가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