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쁨에 동참하세요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세요 (눅15:1-10)

* 많은 분들에게 익숙한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번의 비유(parable)가 등장합니다. 비유의 공통점이 있다면 한결같이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기쁨'이 강하게 묘사된다는 사실입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는 목자와 여인의 심정에서(6,9절) 우리는 일상에서는 보지 못하는 독특한 주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주님의 기쁨은 ______________(numerical, economical)인 기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99=1; 9=1과도 같은 말도 안되는 공식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이해할 때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 나머지 하나의 퍼즐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아직 완전한 그림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18:12-14)

2. 주님의 기쁨은 마지막 남은 그 _______________까지 구원하시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 VIP를 찾아서 전도하는 일은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 주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본다면 우리는 여전히 복음화율이 0.1%에도 이르지 못하는 5천여개의 미개척종족(UUPG)에게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마24:14)

숙제:

1. VIP 초청잔치를 앞두고 내가 다가가야 할 그 한 영혼에게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이번 주가 되십시오. (전화, 안부문자, 식사초대, etc…)

2. 우리 교회가 입양하여 기도하고 있는 다섯 개의 미개척종족 (핀자라, 마흐야반시, 보라, 카푸, 발미키족)을 기억하며 자신의 기도수첩에 포함하세요.

초대교회의 선교 모델

초대교회의 선교 모델 (약1:27)

* 코로나 이전부터 활성화 되어가던 '비대면' 방식은 어느덧 우리 시대 소통방식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는 우리에게 활짝 다가온 비대면 시대를 마주하며 어떠한 대안적 메시지를 전해야 할까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살아갔던 방식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초대교회 공동체의 선교 모델 두 가지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나요?

첫째로,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 다시 말해 (hospitality, loving strangers)을 중요 가치로 여겼으며


- 손대접 전통은 초대 교회가 매우 중요시했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딤전3:2; 딛1:8; 눅14:12-14; 마25:40)
- 가정교회는 식탁공동체이며 낯선 이에게 숟가락을 더 놓는 행동은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위대한 섬김입니다.
- 인종적 편견(xenophobia)이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야 할 손대접(philo-xenia)은 교회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이 시대의 귀한 전통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 다시 말해 도덕적 (moral purity)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 극소수에 불과했던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을 움직였던 가장 큰 힘은 순결에 있었습니다.
- 주님은 어그러지고 뒤틀린 이 세상 속에서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 적용과 숙제:
- 이번주부터 3주간 실시되는 '긴급 재난 구제 헌금'을 통해 지구상의 가장 열악한 나라에 속하는 아이티 땅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우리곁에 이웃으로 찾아올 아프간 난민들에게 사랑의 물품을 전합시다.
- 비대면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낯선 이들을 서로 품고 섬기며,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는 가정교회의 귀한 가치를
포기하지 말고 살아갑시다.

기쁨의 동역자

기쁨의 동역자 (빌1:3-11)

1. 빌립보서의 시대적 배경

2. 그들은 서로 동역의 관계였습니다.(partnership, partaker) 3-7절은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과의 함께 했었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참여하였다고 말하는 이 단어는 코이노이아인데 단지 교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빌1:3,7)

3. 바울은 진실로 그들이 나에게 기쁨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에게 기쁨이 된다고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빌1:4,8; 2:17,18; 4:1,10)빌립보교회와 달리 고린도교회는 이러한 관계를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고전9:1-18, 고후11:8-9)

4. 바울이 그들을 기뻐한 이유는 그리스도라는 공동의 목적과 일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기뻐하는 모습 VS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기뻐하는 모습

5. 기쁨이 되는 동역자가 가져야 할 모습은 (바울의 빌립보 교인을 향한 기도제목)

1) 그들의 사랑이 지식과 지혜로 흘러 넘쳐 분별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9,10절) - 히5:13-14

2) 이 지혜로운 사랑이 도덕적 분별로 귀결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10절) - 행24:16, 히3:2, 딛2:10

3) 그들이 의로운 삶의 열매를 넘치도록 가득 맺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11절) - 갈5:22-23

적용 및 숙제

- 여러분 주변에 기쁨의 동역자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바울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여러분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교회 공동체에 동역의 자리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가정교회(4):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가정교회(4):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고전11:18-34)

* 오늘 우리는 성찬주일로 지키며 주 안에서 하나된 공동체인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주의 만찬에 나아가는 우리는 말씀 앞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1. 마음의 ( )로 일어나는 증오와 복수, 배제에는 해답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18-22절)

- 사람이 모인 곳에는 분열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마땅한 것은 아닙니다

- 사람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는 가장 큰 힘은 증오와 복수심입니다

- 그러나 복수가 반복된다면 죽음의 악순환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2. 우리는 주의 몸을 ( )치 못하는 자신의 연약함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27-29절)

- 주의 만찬으로 나아가는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의례적으로 참여하면 안됩니다

-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를 살피고 주의 몸을 분별하라고 하십니다

3.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 )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23-26절)

-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은 죄인들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신 가장 큰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 성찬예식을 행할 때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께서 행하신 사랑을 기억하며 행해야 합니다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적용과 숙제:

- 이전에 아무 의식 없이 참여하던 성찬식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감사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말씀을 적용하며 참여해 보십시오.

- 임마누엘 가정교회들이 서로의 차이점과 연약함을 품고 포용하는 '주님의 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가정교회(3): 서로 짐을 져야 합니다

가정교회(3): 서로 짐을 져야 합니다 (갈6:1-10)

* 신앙생활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무인도에 갇힌 상황이 아니라면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혼자서도 하나님 잘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어딘가 자신의 나사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공동체로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정교회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1. 상호 간에 ( )을 지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

- 경쟁심에서 비롯되는 결과

= 자만심으로 그치게 됩니다. (갈5:26; 3절)

- 섬김의 정신에서 비롯되는 결과

= 온전히 회복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1절)

= 서로 책임을 지는 관계가 됩니다. (2절)

*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결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존재입니다. (4-6절)

2. 한 영혼을 향한 ( )는 공동의 섬김을 통해 ( )을 맺는다는 사실입니다. ( )

- 목장에서 무엇을 뿌리는가에 따라 그대로 결실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7절)

-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됩니다. (9절)

적용과 숙제:

* 무조건 목장에 소속하겠다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 여러분의 영혼을 위하여 수고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지원해 주십시오.

*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시면 가을에 목자/부목자로 헌신해 주십시오.

가정교회(2): 좋은 목자가 되세요

가정교회(2): 좋은 목자가 되세요 (히13:17-21)

* 가정교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정신 중에 하나는 평신도와 사역을 분담하는 리더십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원래 평신도나 성직자에 대한 구분이 없습니다. 평신도(laity)라는 단어는 교권주의가 발전된 후 생성된 말입니다. 가정교회 운동은 평신도들에게 목회의 자리를 되찾아 주어 교회의 갱신과 회복을 이룰 수 있는 마지막 소망입니다.

* 가정교회의 성공을 위한 주요한 성패는 리더인 목자와 부목자에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혼을 맡아 돌보는 목자의 직무는 힘들지만 사모해야 하는 귀한 자리입니다. 왜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기꺼이 목자의 직분을 감당해야 할까요?

1. 영혼을 위하여 ( )하는 것만큼 더 큰 즐거움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17절)

- 사람을 돌보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주어집니다.

- "Everybody is normal till you get to know them." (John Ortberg)

- 온전한 기쁨을 유지하기 위한 길은 오로지 사랑에 있습니다. (요21:15)

2. 능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큰 ( )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20-21절)

- 우리는 작은 목자이며 더 큰 목자가 우리의 사역을 완성케 하실 것입니다.

- 지점장이 되어야지 사장이 되려하면 안됩니다. (벧전 5:2-4)

- 노병은 아직도 전투의 현장에 있는 사람입니다. 아직 사라져서는 안됩니다. (마25:24-25)

적용과 숙제:

* 가을에 새로 시작되는 목장을 위해 목자와 부목자로 헌신해 주십시오.

* 만 66세 이상의 좀 더 자유롭게 모이는 목장을 위한 목자로 서원해 주십시오.

가정교회(1): 왜 가정교회인가?

가정교회(1): 왜 가정교회인가? (눅5:31-39)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논쟁하는 자리에 계십니다. 원인 제공은 예수님 쪽에서 하신 것 같습니다. '왜 죄인들과 어울리고 왜 금식하며 기도하지 않느냐'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준비하는 새로운 목장재편성과 가정교회의 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 임마누엘 장로교회는 99년 4월부터 지금까지 가정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하였고 그 가운데 걸어 왔습니다. 2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변화와 도전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정감이나 단순한 친목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되고 계속해서 도전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1. 가정교회는 교인을 ( )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의 ( )이기 때문입니다.

- 셀교회와 가정교회의 차이를 아시나요? - 교회는 하나의 조직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임을 잊지 마십시오.

-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가정교회를 통해 실현됩니다.

- 가정교회는 유동성, 다양성, 신축성을 가지고 끊임 없이 갱신되어야 합니다.

2. 가정교회의 성도들은 단순한 ( )이 아니라 ( ) 사역자이기 때문입니다. (엡4:12-13)

- 주님은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을 목회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 가정교회의 성도들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몸을 세워야 합니다. (엡4:15-16)

-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다 가정교회의 일원으로 사역하는 꿈을 함께 꿉시다.

적용과 숙제:

- 가정교회에 소속되어 있다가 나오신 분들은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참된 교회의 지체로서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있는가?

- 목자/부목자로 헌신하시기 원하시는 분은 기도하면서 이번에 마음의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 8월7일, 14일 오전에 진행되는 가정교회 세미나에 등록하셔서 가정교회의 참된 의미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 회복되다

바울, 회복되다 (행18:9-11)

*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낯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한 바울의 모습은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의 사나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의 모습은 지친 모습, burn out 된 모습입니다. 바울이 지친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1) 여정이 힘들었습니다 -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2) 고린도는 힘든 도시였습니다. 3) 혼자였습니다. (고전 2:3)

그런데, 바울이 어떻게 새 힘을 회복했을까요?

I. 기도할 때 회복됩니다. (행 18:9)

밤새 기도했고,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했고, 세밀하게 기도했습니다.

II.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회복됩니다. (행 18:10)

함께 (롬 6:8, 고전 7:24, 고후 5:8, 엡 2:5) 안에 (롬 8:1, 롬 8:39, 고전 16:24, 빌 4:4, 딤후 2:1)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III. 공동체와 함께 할 때, 회복됩니다.

1) 실라와 디모데 (행 18:5)

2) 브리스가와 아굴라 (행 18:2-3, 롬 16:4)

3) 유스도와 그리스보 (행 18:7-8)

* 우리도 목장 공동체안에서 새 힘을 회복하시길 축복합니다.

믿고 싶어하는 당신에게(4): 다닐 만한 교회가 없습니다

믿고 싶어하는 당신에게(4): 다닐 만한 교회가 없습니다 (엡4:11-16)

* 우리 주변에는 교회에 다니시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출석을 그만 두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분들의 다양한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실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생겨난 '가나안 성도'라는 신종 용어는 '안나가'를 거꾸로 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믿지만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분들을 가리킵니다. 다닐만한 교회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할 수 있는 권면은 무엇일까요? 에베소서에서 말씀하는 신앙의 본질, 교회의 본질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교회의 규모를 보지 말고 ( )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 교회가 크다고 해서 다 좋은 교회가 아니며 작은 교회라고 다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 교회의 건강함을 가늠하는 척도는 숫자가 아니라 거룩함입니다. (*바울의 기도 ①엡1:15-19; ②엡3:14-19)

2. 사람을 바라보면 실망하지만 ( )을 바라보면 성숙해 집니다. (15-16절)

- 교회의 머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엡1:22-23; 2:20-22; 15-16절)

- 사람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3. 다닐 교회를 찾지 말고 ( ) 교회를 찾으십시오. (12절)

- 목회자의 직무는 성도들을 잘 세워드리는(equip) 데에 있습니다.

- 봉사의 일은 곧 목회와 사역(ministry)입니다. 성도님들이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진정으로 아름답고 완벽한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 성화되어 가는 중이고 우리의 구원은 여전히 공사중(under construction)입니다. 당신께서 가진 열정으로 좋은 교회를 세워 가십시오.


믿고 싶어하는 당신에게(3): 도저히 안 믿어집니다

믿고 싶어하는 당신에게(3): 도저히 안 믿어집니다 (히11:1-3)

* 신앙의 세계는 신비롭고 설명되지 않는 영역입니다. 단순히 증명되지 않는다고 미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요?

-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종류의 질문은 중요하지 않으며 미신에 불과하니 제거해야 한다" - 리처드 도킨스

- "과학과 신앙은 서로 다른 종류의 질문을 다룬다. 과학은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질문을(HOW) 다룬다면, 신앙의 영역은 보다 철학적인 질문(WHY)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 프랜시스 콜린스

- 이 두 사람의 논증에서 우리는 어느 것이 더 합당하다고 보아야 할까요? 신앙의 세계에 대해서 방황하며 질문하시는 분들이 생각해야 할 세 가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 )과 신앙의 차이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 신앙인의 확신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요? (창1:1; 히1:1-3)

2. 신앙 영역에서는 이해가 먼저가 아니라 ( )이 먼저입니다.

- "You need to embrace first before you understand about somebody."

3. 신앙의 영역에서 ( )은 신앙 생활의 일부입니다.

- "it's okay to question your faith." (약1:8; 마28:16-17)

* 결론:

당신의 닫혀진 마음을 여시고 인격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여 보세요. 의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계속해서 질문해 보세요. 찾고 구하는 사람에게는 문이 열리기 마련입니다.

영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영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잠24:1-14)

임마누엘 장로교회의 수요예배 설교입니다. 가정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님들과 온라인으로 함께 드렸던 2021년 7월 7일 예배에서는 조종연 목사님께서 잠언 24장 1-14절 말씀을 가지고 "영적 지혜가 있는 사람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