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 애굽이여(사19:24-25) - 박성호 담임목사(2024년 7월 17일 수요예배)
2024년 7월 17일 수요예배에서는 박성호 담임목사님께서 이사야 19장 24절에서 25절 말씀을 가지고 "내 백성 애굽이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2024년 7월 17일 수요예배에서는 박성호 담임목사님께서 이사야 19장 24절에서 25절 말씀을 가지고 "내 백성 애굽이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 광야는 절망입니다. 광야는 답이 없는 질문의 현장입니다. 하지만 이사야 12장 본문은 광야 속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처럼 암울한 현실 속에 울려 퍼지는 감사의 노래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기에(요3:17)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우리가 여전히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본문 속에서 주시는 교훈을 묵상하며 받은 구원을 기쁨으로 노래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1. 진노가 변하여 위로를 주시는 주님이기 때문입니다(1절; 엡2:3-5).
* 전에는~ 이제는~
* 우리의 시선은 심판과 고난 너머에 반드시 있을 “그날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2. 두려움이 변하여 신뢰를 주시는 주님이기 때문입니다(2절; 출14:13; 15:1-2)
*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출애굽의 하나님은 동일하게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3. 광야 같은 현실에서 구원의 우물을 공급하시는 주님이기 때문입니다(3절; 사8:6; 렘2:13; 요4:10-14)
*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이 있습니다.
* 구원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선포하며 온 땅에 알려야 합니다(4-5절).
적용을 위한 묵상:
*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우물 없는 광야처럼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릴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 예수님 외에는 채울 수 없는 ‘목마름’이 나에게 있음을 인지하시는지요? 터진 웅덩이에 물을 채워서는 결코 만족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7월25일 예수영접모임에 인도해야 할 나의 VIP는 누구이신지요? 그분에게 참석을 권해 보십시오
2024년 7월 10일 수요예배에서는 이산돌 목사님께서 전도서 4장 1절에서 12절 말씀을 가지고 "학대 가운데 위로자가 없도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 전도서를 피상적으로 읽는 사람들은 인생의 덧없음과 죽음의 허무함에 관심을 둡니다. 하지만 전도서의 결론은 그렇게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일의 결국을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라’(전12:13)는 말씀을 온전히 적용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속에서 주시는 교훈을 찾아 봅시다.
1. Memento Mori: 인간이 미래에 관해 유일하게 예측할 수 있는 단 한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v.1-6; 7:2).
* 인간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며 광기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모두 동등합니다(v.3).
* 그래도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v.4) 때문은 아직 살아 있을 때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2. Carpe Diem: 선물로 주어진 현재의 삶을 쾌락이 아니라 희락으로 채워야 합니다(v.7-12; 3:12-13).
* 깨끗한 생활을 하고 주신 것에 만족하며 기회가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하며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하나님을 섬기십시오(마25:37-40, 44-46).
이번 주 숙제:
1. 인생을 마감할 날이 언제든 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한두 페이지 정도로 노트에 적어 보십시오. 당신은 어떤 말을 꼭 남기고 싶으신가요?
2. 제임스 패커 목사님이 요약한 '전도서의 교훈'을 복습해 보며 내가 반드시 적용해야 할 한 두 가지 사항을 결단해 보십시오.
2024년 7월 3일 수요예배에서는 박기한 목사님께서 잠언 1장 1절에서 9절 말씀을 가지고 "인생은 예술가처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 정보는 바다처럼 넘쳐흐르지만 분별력이 부족한 시대입니다. 지식은 차고 넘치지만 지혜가 부족한 시대입니다. 가짜 뉴스와 가짜 정보가 넘쳐나는 중에 진정한 답을 얻기 위해 현자들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풍요 속의 빈곤’ 속에서 우리가 잠언에서 얻을 수 있는 답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잠99:10)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데에 있습니다. 삶 속에 주어지는 수많은 계획과 선택 중에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얻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마음에 새겨 봅시다.
1. 계획은 사람에게 속한 영역이지만 미래는 하나님께 속한 영역입니다(v.1, 9, 33).
*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결과는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 내가 계획한 일이 과연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지 궁금하다면 자신의 동기를 점검해 보십시오(v.2)
2. 삶의 모든 일들을 주님께 맡겨 버려야 합니다(v.3).
* 맡긴다는 것은 주도권이 이양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로 굴려 버리십시오.
* 맡긴 사람에게 필요한 자세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v.4), 교만한 마음을 버리는 것입니다(v.5;18-19).
* 적용을 위한 질문:
1. 오늘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계획들 중에서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맡겨 버리라고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맡기고 나서 내가 해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 분별에 관하여 새롭게 깨닫게 된 사실은 무엇인가요?
2024년 6월 26일 수요예배에서는 민효식 전도사님께서 시편 135장 1절에서 14절 말씀을 가지고 "나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6월 23일 주간 성경통독 범위는 시편 119편부터 146편까지 입니다.
왜 시편 119편이 1편과 19편의 합일까요?
히브리어 아쉬레(אַ֥שְֽׁרֵי)는 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복이 넉넉하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1편과 119편 모두 아쉬레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시편 19편은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대하여 노래하며
시편 119편은 시편 119편의 확장판입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은 176절(22 * 8) 까지 기록되었습니다.
리처드 포스터가 영적훈련과 성장에서 말하는 학습의 4단계는 ( 반복 ) - ( 집중 ) - ( 이해 ) - ( 숙고 ) 입니다.
성경을 학습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4단계를 다 거쳐야 합니다.
우리가 학습해야 할 첫째 되고도 가장 중요한 책은 바로 성경입니다.
디엘 무디의 말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 말씀 )을 가까이 하면 ( 죄 )는 도망가고, ( 죄 )를 가까이 하면 ( 말씀 )이 도망간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관계를 깊게 하려면 ( 공동관심 )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며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육신이 되신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의 독생자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을 보았습니다.(요 1:14)그 영광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며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며, 지혜롭게 하며, 기쁘게, 순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적용
시편 119편을 읽으며 묵상해 봅시다.
반복해서 집중해서 읽어 봅시다.
소리 내어서 내가 기도하듯이 마음을 담아 읽어 봅시다.
숙고하면서 이 말씀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과 소원이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읽어봅시다.
2024년 6월 19일 수요예배에서는 조종연 목사님께서 시편 96장 1절에서 9절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부를 새 노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을 맞아 세상에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살아가시는 모든 형제님들을 축복합니다. 또한 삶 속에서 아버지를 두신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중후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요? 시편 4권을 여는 90편에서 읊조린 ‘모세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되어 봅시다.
1.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우리는 유한한 존재임을 잊지 마십시오(1-10절)
-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벧후3:8; 약 1:9-11).
-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는 ‘거룩성’에서도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7-10절)
2. 한계가 많은 인생을 살아갈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11-12절)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teach us to number our days)
- 과거를 통해 우리는 지식을 얻었지만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3. 고된 나날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과 삶의 의미를 찾으십시오(13-17절)
- 하나님의 인자하심(hesed)은 진정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합니다(14절).
- 나의 일에 하나님을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손이 행한 일’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게 하십시오(17절).
* 적용을 위한 숙제
- ‘아버지의 날’입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다면 나의 감사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 실제적인 표현을 해보십시오.
- 나의 일에 하나님을 초대하려면 일상의 삶을 대하는 나의 자세와 방식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겠습니까? 일상을 대하는 나의 마음에 고됨과 괴로움이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깊이 한번 생각해 봅시다.
2024년 6월13일 수요예배에서는 박성호 담임목사님께서 시편 73장 16절에서 28절 말씀을 가지고 "아삽의 고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1. 인생에는 절망하는 순간이 있다
전에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 함께 신앙의 즐거움을 누렸지만, 지금은 그런 신앙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가까이 있었지만,이제는 언제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지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일이, 환경이, 삶이 전보다 나빠져 있다. 심지어는 이러한 삶을 보고 사람들이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난마저 한다.
2. 인생의 절망은 심각한 영적 가뭄으로 부터 온다.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는다. 불안해 하며 낙심한다.
하나님이 도우실까 하는 의문마저 갖는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저 과거의 즐거움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3. 낙망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님을 찾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눈물로 통회하고 자복하며 애통하며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와야 한다. 소망은 하나님 뿐이시다.
하나님 모르는 세상(원수)들과 달리 그래도 하나님을 찾으면 된다.
4. 대부분의 우리의 삶은 구약의 삶들과는 차이가 있다.
오늘 본문의 구약 성도는 “원수”들의 비난을 듣는 위치에 있다.
즉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들의 절망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위치가 모호한 채 일어난다.
1) 대부분의 절망은 개인적인 욕망의 좌절에서 시작된다. (실패,상처, 외로움, 상실)
2)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절망을 영적인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3) 따라서 기도를 개인의 필요에 따른 기도를 하지, 영적인 기도를 하지 않는다.
4)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여전히 수고하고 노력해서 이겨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5. 인생의 절망에서 이기는 신약적 방법
1) 내가 서야 할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인가? 세상의 자녀인가?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것의 해결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께 가난하라.
2)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임을 받아들이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처리할 수 있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3) 주님의 멍에를 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생의 멍에는 벗겨지지 않는다. 다만 가볍게 할 수 있는 법을 배울 뿐이다.
4) 여기서 벗어나면, 주를 갈망하는 삶을 살아간다.
5) 주의 초청에 응하고, 주를 바라며, 주를 기뻐하며 살아가자.
2024년 6월 5일 수요예배에서는 박성호 담임목사님께서 시편 8장 1절에서 9절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 우리주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20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철학자 프란시스 쉐퍼는 그의 책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He is There and He is Not Silent)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시지 않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임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며 드러내고 계신가요?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두가지 길이 있음을 증거합니다. 오늘은 그 두가지 길이 무엇이며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반응해야 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적용점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자연 세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1-6절).
* 태양 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4절)
2.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7-11절).
* 특별 계시는 일반 계시로는 다 알릴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섭리, 구속의 역사와 종말을 말씀의 형태로 계시한 것을 말합니다.
* ‘소성시키며, 지혜롭게 하며,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고, 영원까지 이르고, 의롭게 하시는 말씀.’
3. 우리에게 찾아와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3.1.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사모해야 합니다(7-11절)
* 말씀 속으로 들어가면 갈 수록 우리의 눈은 더 맑아집니다(8절)
3.2.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삶으로 예배해야 합니다(12-14절)
*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면 죄는 도망가고, 죄를 가까이 하면 말씀은 도망간다.” -D.L. Moody
적용을 위한 질문:
1. 자연과 우주의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크게 느꼈던 적이 있으셨나요? 일상 속에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한 적이 있었다면 그 때의 경험을 한번 나누어 봅시다.
2.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의 이름과 특성을 6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남의 말이 아니라 나의 말로 한번 표현해 보시기 바랍니다.
3. 한달 동안 매일 시편을 꾸준히 읽고 골방에서 기도할 때 시편을 인용하여 기도하십시오.
2024년 5월 29일 수요예배에서는 이에스더 전도사님께서 욥기 38장 1절에서 7절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욥기는 고난에 관한 질문의 해답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받지만 욥이 고난을 받는 까닭은 욥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생긴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욥기의 핵심 주제는 고난이 아니라 고난받는 욥이 대하여야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그가 고난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해결하십니다.
그 과정에 욥의 세 친구들(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욥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엘리후는 어떨까요?
- 엘리후는 왜 중요한가?
- 엘리후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영이 원하셨다고 합니다(32:17-18).
- 엘리후는 욥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동정했습니다(33:6-7).
- 엘리후는 욥의 대답을 깊게 듣고 그에 대해 반박합니다.
1) 하나님은 분명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33:15-22)
꿈과 환상을 통해, 고통을 통해
2) 하나님은 분명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분이라고 말합니다.(34장)
3) 하나님은 믿음으로 자신을 찾는 자에게 응답하십니다.(35장)
엘리후는 욥을 비롯해 고난당하는 모든 신자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고 그분 앞에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숙제 밎 적용
1) 우리가 욥과 같은 상황 속에 있다면
2) 우리가 욥과 같은 상황 속에 있는 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면
2024년 5월 22일 수요예배에서는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님께서 고린도후서 6장 10절 말씀을 가지고 "모든것을 가진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당신이 믿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의 진실성이나 허위가 당신에게 생사의 문제가 되기까지는, 당신이 그것을 얼마만큼 진정으로 믿는지 결코 알 수 없다.’ (C. S. Lewis)
인생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너무나 많습니다. ‘현대판 욥’처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제 마음에도 큰 아픔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고난을 우리에게 허락하셔서 신앙의 위기를 겪게 하실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위해 본문이 위치한 욥기 22-27장에서 발견되는 영적인 지혜를 발견해 가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1.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8-10절)
*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우리 인생에 존재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 길이 보이지 않아도, 마음은 두렵고 떨려도(15-16절) 욥은 하나님이 그의 인생을 주관하고 계심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2. 사람이 주는 위로 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더 갈망해야 합니다 (2-5, 13-14절)
* 3라운드의 대화(22-27장)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논쟁은 점점 빛을 잃고 있으며 (fade-out),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는 욥의 갈망은 더 선명해 집니다.
*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던 욥의 신앙은 고난에 직접 노출 되면서 사고와 신앙이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결론: 사람은 우리의 아픔을 중재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완전한 중재자가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셔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2024년 5월 19일 주일 1부 예배에서 안요한 목사님께서 사도행전 16장 22절에서 26절 말씀을 가지고 "한밤중에 기도와 찬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2024년 5월 15일 수요예배에서는 이수복 목사님께서 욥기 1장 20절에서 22절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신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