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 = 119 = 176

시편 1+19 = 119 = 176 (시119편 1-8절) - 박기한 목사

6월 23일 주간 성경통독 범위는 시편 119편부터 146편까지 입니다. 

왜 시편 119편이 1편과 19편의 합일까요?
히브리어 아쉬레(אַ֥שְֽׁרֵי)는 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복이 넉넉하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1편과 119편 모두 아쉬레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시편 19편은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대하여 노래하며 
시편 119편은 시편 119편의 확장판입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은 176절(22 * 8) 까지 기록되었습니다. 

리처드 포스터가 영적훈련과 성장에서 말하는 학습의 4단계는    (  반복     ) - (    집중   ) - (     이해   ) - (    숙고    ) 입니다. 
성경을 학습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4단계를 다 거쳐야 합니다. 
우리가 학습해야 할 첫째 되고도 가장 중요한 책은 바로 성경입니다. 

디엘 무디의 말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   말씀  )을 가까이 하면  ( 죄   )는 도망가고, (   죄   )를 가까이 하면 (    말씀    )이 도망간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관계를 깊게 하려면 (    공동관심    )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며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육신이 되신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의 독생자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을 보았습니다.(요 1:14)그 영광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며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며, 지혜롭게 하며, 기쁘게, 순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적용
시편 119편을 읽으며 묵상해 봅시다. 
반복해서 집중해서 읽어 봅시다. 
소리 내어서 내가 기도하듯이 마음을 담아 읽어 봅시다. 
숙고하면서 이 말씀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과 소원이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읽어봅시다.

아버지의 기도

아버지의 기도(시90:1-17) - 박성호 담임목사

*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을 맞아 세상에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살아가시는 모든 형제님들을 축복합니다. 또한 삶 속에서 아버지를 두신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중후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지요? 시편 4권을 여는 90편에서 읊조린 ‘모세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되어 봅시다.

1.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우리는 유한한 존재임을 잊지 마십시오(1-10절)
-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벧후3:8; 약 1:9-11).
-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는 ‘거룩성’에서도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7-10절)

2. 한계가 많은 인생을 살아갈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11-12절)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teach us to number our days)
- 과거를 통해 우리는 지식을 얻었지만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3. 고된 나날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과 삶의 의미를 찾으십시오(13-17절)
- 하나님의 인자하심(hesed)은 진정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합니다(14절).
- 나의 일에 하나님을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손이 행한 일’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게 하십시오(17절).  

* 적용을 위한 숙제
-  ‘아버지의 날’입니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다면 나의 감사한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 실제적인 표현을 해보십시오.
- 나의 일에 하나님을 초대하려면 일상의 삶을 대하는 나의 자세와 방식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겠습니까? 일상을 대하는 나의 마음에 고됨과 괴로움이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깊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절망하지 않는 인생

절망하지 않는 인생 (시42:1-11) - 고종률 목사

1. 인생에는 절망하는 순간이 있다
전에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 함께 신앙의 즐거움을 누렸지만, 지금은 그런 신앙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가까이 있었지만,이제는 언제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지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일이, 환경이, 삶이 전보다 나빠져 있다. 심지어는 이러한 삶을 보고 사람들이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난마저 한다. 

2. 인생의 절망은 심각한 영적 가뭄으로 부터 온다.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는다. 불안해 하며 낙심한다.
하나님이 도우실까 하는 의문마저 갖는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저 과거의 즐거움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3. 낙망이 찾아올 때,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님을 찾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눈물로 통회하고 자복하며 애통하며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와야 한다. 소망은 하나님 뿐이시다.
하나님 모르는 세상(원수)들과 달리 그래도 하나님을 찾으면 된다.

4. 대부분의 우리의 삶은 구약의 삶들과는 차이가 있다.
오늘 본문의 구약 성도는 “원수”들의 비난을 듣는 위치에 있다.
즉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들의 절망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위치가 모호한 채 일어난다.
1) 대부분의 절망은 개인적인 욕망의 좌절에서 시작된다. (실패,상처, 외로움, 상실)
2)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절망을 영적인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3) 따라서 기도를 개인의 필요에 따른 기도를 하지, 영적인 기도를 하지 않는다.
4)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여전히 수고하고 노력해서 이겨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5. 인생의 절망에서 이기는 신약적 방법
1) 내가 서야 할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인가? 세상의 자녀인가?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것의 해결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께 가난하라.
2)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인생임을 받아들이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처리할 수 있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3) 주님의 멍에를 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생의 멍에는 벗겨지지 않는다. 다만 가볍게 할 수 있는 법을 배울 뿐이다.
4) 여기서 벗어나면, 주를 갈망하는 삶을 살아간다.
5) 주의 초청에 응하고, 주를 바라며, 주를 기뻐하며 살아가자.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 (시19:1-14) - 박성호 담임목사

20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철학자 프란시스 쉐퍼는 그의 책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He is There and He is Not Silent)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시지 않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임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며 드러내고 계신가요? 전통적인 신학에서는 두가지 길이 있음을 증거합니다. 오늘은 그 두가지 길이 무엇이며 그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반응해야 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적용점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자연 세계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1-6절).
* 태양 조차도 하나님 앞에서는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4절)

2.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7-11절).
* 특별 계시는 일반 계시로는 다 알릴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섭리, 구속의 역사와 종말을 말씀의 형태로 계시한 것을 말합니다.
* ‘소성시키며, 지혜롭게 하며,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고, 영원까지 이르고, 의롭게 하시는 말씀.’

3. 우리에게 찾아와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3.1.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사모해야 합니다(7-11절)
* 말씀 속으로 들어가면 갈 수록 우리의 눈은 더 맑아집니다(8절)
3.2.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삶으로 예배해야 합니다(12-14절)
*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하면 죄는 도망가고, 죄를 가까이 하면 말씀은 도망간다.” -D.L. Moody

적용을 위한 질문:
1. 자연과 우주의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크게 느꼈던 적이 있으셨나요? 일상 속에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한 적이 있었다면 그 때의 경험을 한번 나누어 봅시다.
2.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의 이름과 특성을 6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남의 말이 아니라 나의 말로 한번 표현해 보시기 바랍니다.
3. 한달 동안 매일 시편을 꾸준히 읽고 골방에서 기도할 때 시편을 인용하여 기도하십시오.

엘리후: 하나님을 예비하는 자

엘리후: 하나님을 예비하는 자 (욥32:15-33:7) - 이산돌 목사

욥기는 고난에 관한 질문의 해답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받지만 욥이 고난을 받는 까닭은 욥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생긴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욥기의 핵심 주제는 고난이 아니라 고난받는 욥이 대하여야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그가 고난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해결하십니다.
그 과정에 욥의 세 친구들(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욥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엘리후는 어떨까요?
-  엘리후는 왜 중요한가?
-  엘리후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영이 원하셨다고 합니다(32:17-18).
-  엘리후는 욥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동정했습니다(33:6-7).
-  엘리후는 욥의 대답을 깊게 듣고 그에 대해 반박합니다.

1)  하나님은 분명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33:15-22)
꿈과 환상을 통해, 고통을 통해
2)  하나님은 분명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분이라고 말합니다.(34장)
3)  하나님은 믿음으로 자신을 찾는 자에게 응답하십니다.(35장)

엘리후는 욥을 비롯해 고난당하는 모든 신자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고 그분 앞에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숙제 밎 적용
1)  우리가 욥과 같은 상황 속에 있다면
2)  우리가 욥과 같은 상황 속에 있는 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면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욥23:1-17) - 박성호 담임목사

*‘당신이 믿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의 진실성이나 허위가 당신에게 생사의 문제가 되기까지는, 당신이 그것을 얼마만큼 진정으로 믿는지 결코 알 수 없다.’ (C. S. Lewis)

인생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너무나 많습니다. ‘현대판 욥’처럼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제 마음에도 큰 아픔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고난을 우리에게 허락하셔서 신앙의 위기를 겪게 하실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위해 본문이 위치한 욥기 22-27장에서 발견되는 영적인 지혜를 발견해 가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1.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8-10절)
*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이 우리 인생에 존재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 길이 보이지 않아도, 마음은 두렵고 떨려도(15-16절) 욥은 하나님이 그의 인생을 주관하고 계심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2. 사람이 주는 위로 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더 갈망해야 합니다 (2-5, 13-14절)
* 3라운드의 대화(22-27장)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와 논쟁은 점점 빛을 잃고 있으며 (fade-out),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는 욥의 갈망은 더 선명해 집니다.
*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던 욥의 신앙은 고난에 직접 노출 되면서 사고와 신앙이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결론: 사람은 우리의 아픔을 중재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완전한 중재자가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셔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에스더 9:20-32) - 박성호 담임목사

* 확연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 보다 하나님의 부재 속에서도 그분을 섬기는 삶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에스더서를 구성하는 167절 중에 하나님의 이름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페르시아 왕의 이름만 190번 정도 언급됩니다. 우리가 숨쉬며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부재 속에서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들의 모습만 눈에 띄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물밑에서 일하고 계시며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부림절’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함께 묵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1. 부림절에 발견되는 하나님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는 반전의 하나님이십니다(22절).
* 아하수에로 왕이 내린 두개의 조서에서 발견되는 엄청난 반전을 묵상해 보십시오(에3:7-12; 에8:7-14).
* 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심오한 ‘역전의 이야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창3:15; 요12:31-33; 롬 5:6-8).

2. 부림절에 발견되는 하나님은 가벼운 감정에 따라 일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에9:5-10; 삼상15:7-9).
* 타락한 인간은 감정의 충동에 따라 움직이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행동에는 치우침이 없습니다. 
* 역사의 단면을 통해 발견되는 인간의 치우침에 시험에 들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음으로 바라 보아야 합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 ‘예루살렘에 샬롬이 없다’는 말처럼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도 때론 진정한 평강이 없고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지 못해 세상의 힘과 권력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다 있습니다. 이번 한 주, 말씀에 의지하여 진정한 평강을 얻기 위하여 내가 버려야 할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요?  물밑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 바라보는 삶을 멈추지 마십시오.

내 하나님의 선한 손

내 하나님의 선한 손(느2:8-18) - 박성호 담임목사

*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별처럼 빛을 발했던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통해 연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위대했던 지도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 뒤에서 은밀히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탁월한 리더십을 나타냈던 느헤미야는 자신의 입으로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다’(v.8)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겸손함과 고결한 신앙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신을 돕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음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느헤미야의 삶을 움직이신 하나님의 손이 어떠한 방식으로 함께 하셨는지 살펴보며 주님이 주시는 교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손은 진중히 기도하며 실천에 옮기는 사람에게 함께 하십니다
* 신앙인은 인내로 기도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때가 오면 행동해야 합니다(느1:1; 느2:1).
* 에스라가 ‘이상주의적 믿음’을 대변한다면 느헤미야는 ‘실용주의적 믿음’을 대변합니다.
* 참된 신앙인은 기도 없이 일만 하지도, 행동 없이 기도만 하지도 않습니다.

2. 하나님의 손은 신중히 계획하며 사명을 이루는 사람에게 함께 하십니다
* “밤에 일어나..나갈 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v. 12)
* 거룩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적용을 위한 결론:
* 당신의 믿음은 에스라의 이상주의적인 믿음을 닮았습니까, 아니면 느헤미야의 실용주의적인 믿음을 닮았습니까? 믿음의 공동체에는 두 종류의 신앙이 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스룹바벨은 성전을 건축, 에스라는 율법을 회복, 느헤미야는 성벽을 완성시켰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이번 주는 성경을 읽으며 우리의 삶에 바로 그 일이 이루어 지며 그분이 내 삶을 다스리시도록 초청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섭리의 파도에 올라타라

섭리의 파도에 올라타라 (스 1:1-4) - 이승제 목사

섭리의 사전적 의미는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 입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도 돌아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자연을 만드신 분, 그 원리와 법칙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분에 등장한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손아래 있었으며 그에게 감동을 주시어 이스라엘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민족도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귀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들도 사용하시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백성에게 감동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과 우리가 속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살려면 무엇을 이해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섭리는 개인의 삶을 넘어 전 인류에게 역사하십니다.
* 하나님이 고레스의 탄생에 개입하셨으며 그가 페르시아 왕이 되는 데까지 세우십니다.
* 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될 것을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언 되었습니다.(대하36:22, 사41:2, 25)
2. 하나님의 섭리는 불신자도 사용하셔서 역사하십니다.
* 하나님 믿는 자도 사용하시고 믿지 않는 자도 얼마든지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그도 하나님의 손아래에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의 섭리는 마음의 감동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 하나님은 고레스도 감동시키셔서 역사를 움직이십니다.(스1:1)
* 하나님은 지금도 감동에 순종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적용을 위한 질문:
* 내 삶에 일어났던 하나님의 감동과 섭리를 돌아봅시다. 어떻게 지금 이 시간에 이곳에서 살면서 지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게 되었나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 최근 언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씨름해 보셨나요? 가장 최근 하나님의 감동을 받으신 적은 언제 인가요?
하나님의 섭리의 파도에 올라타려면 나는 지금 무엇을 그만두고, 무엇을 새롭게 시도해야 할까요?

솔로몬의 부요함을 부러워 말라

솔로몬의 부요함을 부러워 말라 (대하9:13-28) - 박성호 담임목사

마음의 문을 열며:
열왕기와 역대기를 통독하는 4월에 우리 모두가 조심스레 묻는 질문이 있다면 ‘왜 같은 시대를 다루는 통일왕국과 분열왕국 시대의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역대하를 대하는 이번 주, 솔로몬의 인생을 보며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 열왕기와 역대기 저자가 제시하는 명백한 관점의 차이
1. 역대기에는 북이스라엘 왕조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 ‘성전 건축’을 주제로 할 때 북이스라엘 왕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열왕기는 선지자적 관점으로, 역대기는 제사장적 관점으로 역사를 기술한다.
= 따라서 역대기에는 왕들의 허물을 언급하는 선지자적 목소리가 배제되어 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그런 시각에서 보면 솔로몬의 재산과 부요함을 다루는 역대기와 열왕기에도 명백한 저자의 의도와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의 병행구절인 열왕기상 10:14-29을 유심히 비교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의 메시지가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아래의 질문에 답해 보면서 솔로몬 왕의 삶을 평가해 봅시다.
1. 솔로몬이 조각목이 아니라 백향목으로 성전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왕상7:1-12)
2. 솔로몬이 제작한 ‘금 방패’ 이야기에서 발견되는 모순은 무엇인가요? (15-16절)
3. 솔로몬의 말과 병거의 규모가 말해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25-28절; 왕상10:26-29; 신17:14-17)

삶의 열매를 거두며:
하나님이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 모든 후대의 왕들에게 평가의 기준(canon)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왕상11:4, 15:3; 대하7:17-18; 대상18:4). 오늘 하나님은 이 시대 속에서도 기준이 될만한 사람을 여전히 찾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쓸데 없는 ‘금 방패’를 만들지 말아야 하며 내게 주신 말 발의 힘줄을 끊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