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살아계신 하나님은 선교하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 하나님의 말씀

* 하나님은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심판의 경고를 그 성에 가서 외치라고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 그러나 앗수르 제국은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가장 큰 적국이었고, 니느웨는 그 나라의 수도였다.

2. 도망치는 요나, 추격하시는 하나님

* 그 말씀은 요나에게 너무 기쁜 소식이었다. 그가 도망치기만 하면, 니느웨가 멸망하게 된 것이다.

* 그러나 하나님은 폭풍을 몰고 추격하여, 도주하는 그를 붙잡아 다시 니느웨로 보내신다.

* 요나는 성의 없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3:3-4).

* 그러나 뜻밖에 니느웨 백성이 듣고 믿고 회개를 한다.

* 그런 그들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3. 분노하는 요나

* 이런 진행상황을 보며 요나는 불같이 화를 낸다.

*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용서하심에 분노를 쏟아낸다.

* 요나는 니느웨를 심판하시든지 아니면 나를 죽여달라고 항의하며 기도한다.

4. 요나 같은 우리

* 요나는 자신도 알고(1:9) 하나님도 알았지만(4:2) 하나님을 깊이 알지는 못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얼마나 아는가?

* 요나는 이중적 가치관을 가진 ( )주의자였다. 하나님이 나와 내 민족에 베푸시는 은혜는 감사하지만(2:9), 남, 특히 경쟁자나 적국에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싫었다(마20:1-16, 살전2:16). 심판을 받아 멸망하기를 원했다.

*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 요나의 이기심을 드러내신다. 나는 어떠한가? 나도 박넝쿨을 더 아끼고 있지 않은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5. 살아계신 하나님은 선교하는 하나님이시다.

* 요나의 생각과 달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 이방인도 똑같이 사랑하는 하나님이셨다.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부르신 목적은 그들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을 복주시기 위한 것이었다(창12:1-3).

* 하나님은 자신을 알지 못하는 모든 민족과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마28:19, 막16:15, 딤전2:4).

* 특별새벽기도회(월-금)에 참여하자. 하나님은 나만이 아니라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 ‘잃은 영혼’들도 아끼고 사랑하신다.

* 도무지 믿을 것 같지 않았던 니느웨 사람들도 믿고 회개했다. ‘찬양간증집회’와 ‘말씀 잔치’에 VIP를 초청하여, 그들에게 최고의 선물, 하나님의 선물을 받도록 도와주자.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너는 또 가서...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1. 수치를 모르는 백성

*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년)가 죽고 스가랴가 즉위하던 해에 북 왕국 이스라엘을 위해 부르심을 받는다.

* 이스라엘 백성은 번성할수록 하나님을 멀리하고 욕망을 따라 우상을 섬겼다(2:8, 10:1, 13:6).

* 호세아서는 음녀를 사랑하여 결혼하는 선지자처럼 영적으로 창녀가 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이다(1-3장).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여호와께서...우리를 살리시며...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2. 여호와께 돌아가야 한다.

*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10:12-13).

* 우리를 고치고 살릴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기 때문이다.

*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죽으시고 ‘셋째 날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3.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 첫째, 그는 새벽에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실수가 없는 분 이다. 어떤 상황에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분이다.

* 둘째, 그는 적기에 땅을 적시어 농사를 짓게 하는 봄비 같은 분이다. 때를 따라 적시에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4. 백성의 모습

* 반면에 백성의 인애와 신의는 쉬 사라지는 아침 구름이나 이슬처럼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7:14, 10:2-3, 13:1-3).

* 그들은 죄의 심각성을 이해 못하고 회개에 성실함이 없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며 멸망한다(주전 722년).

* 하나님께서 탄식을 하신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5. 하나님의 소원

* 나는 하나님을 아는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요17:

*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을 알아야만 한다. 하나님을 모르면 망하기 때문이다(4:6, 14).

* 하나님은 형식화되거나 오염된 제사가 아니라 인애를 원하고 ‘번제’보다 자신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시는 분이다. 성경을 통독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을 알아가자.

* 하나님을 알고,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살자(12:5-6).

* ‘말씀 잔치’에 VIP를 초청하여,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돕자. 이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가장 소중하고 ( )한 선물이다.

중보자를 찾으시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1. 멸하려고 임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의 영광은 이미 성전을 떠났다(겔8장).

* 백성은 계속 우상숭배, 나그네 학대, 음행 등 온갖 죄악을 즐겼고, 선지자, 제사장, 관리 등 지도자들은 모두 타락하여 백성을 강탈하고 압제했다(22:1-29).

* 의의 하나님은 이제 범죄한 백성을 심판하셔야 했다.

2. 하나님의 탄식

*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멸망시키고 싶지 않으셨다.

* 그는 자신을 막아서서 심판을 멈추게 할 중보자(mediator)가 있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중보자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찾으셨다. 그러나 찾을 수 없으셨다(창18:22-32, 렘5:1).

* 자신의 완전한 의와 한없는 사랑 사이에서 가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본문에서 느끼게 된다.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으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하나님의 진노

*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그의 진노를 그들 위에 쏟아 부으셔야 했다(대하36:16, 애2:1).

*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성전은 약탈당하고 불타 무너진다. 수많은 백성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가고 집들은 불타고 전국토가 황폐화된다.

*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 )의 진노의 심판이다 (히10:30-31, 마10:28, 히9:27, 계6:16-17, 말4:1-5).

"하나님도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4. 스스로 중보자를 세우신 하나님

*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 예루살렘 멸망보다 훨씬 더 혹독할, 최후의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친히 중보자를 준비하셨다 (딤전2:5, 눅2:11, 히2:9, 7:25, 8:6, 9:15,24, 12:24).

*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그의 의의 진노를 그의 아들에게 쏟아 부으심으로 심판을 피할 길을 열어주셨다. (사53:4-6, 마8:17, 요1:29, 갈1:4, 엡5:2, 딛2:14, 계1:5)

5.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라.

* 중보이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피하라(출12:13, 마26:28, 롬5:9).

* 유일한 구원의 중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신’이가 되어 ‘말씀 잔치’에 VIP 초청하자(고후5:20). 나의 VIP 성명( )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1. 에스겔을 부르시다.

* 주전 597년 2차 침입 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에스겔이 30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로 부르셨다(1:1-3).

* 불같은 형상의 ‘네 생물’(four living creatures, Cherubim)의 옹위를 받으며 ‘영광’의 하나님은 찾아오셨다(1:4-28).

* 하나님과의 만남은 소명으로 이어졌다(2:1-10).

* 586년 멸망을 앞두고 포로로 끌려간 이국땅에서는 에스겔이, 고국 땅에서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2.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다.

* 하나님께는 소원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의 백성과 영원히 함께 살면서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다.

* 그래서 성소를 짓게 하시고 백성 가운데 ‘영광’(kabod)을 보이며 임해 오셨다(출40:34-35, 대하7:1-3; 삼상4:21-22).

* 그런데 이제 떠나셔야 했다. 우상숭배가 ( ) 안에 까지 들어왔기 때문이다(8장).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으셨다.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3. 하나님의 마음

*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올라 예루살렘을 떠난다.

* 그런데 동문에서 가시는 걸음을 멈추셨다(stopped). 8:4-6, 10:4, 10:18-19, 11:22-24

*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전은 586년에 불타고 무너진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4.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오다.

*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 아들을 보내셔서 영광의 모습으로 다시 찾아오셨다(요1:14).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다.

* 창조와 심판보다 더 강력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건 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 )이다(요12:16,23,28, 13:31-32, 17:1,24).

5.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삶을 살자.

* 오늘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인 교회(엡2:20-22), 그리고 내 가정, 목장, 미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고 있는가?

* 성전이 성전 되는 것은 외형에 있지 않고(학2:3-9),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머물고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 과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본받지 말자.

*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는 내 삶에 온갖 우상을 무너뜨리고 더러운 욕망에서 자신을 깨끗이 하며 살아야 한다(레19:2).

*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삶, 가정, 목장, 교회, 민족은 망한다.

* 외형에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삶을 살자.

* 하나님의 소원대로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며 영원히 함께 살 것이다(계21:23).

왕이신 하나님을 만나라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1. 웃시야 왕이 죽다. 

* 분열왕국 시대였다. 북 이스라엘 왕국은 하나님을 떠나 죄악에 빠졌고 남 유다 왕국도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사1-5장).

* 웃시야는 주전 792년에 남 유다 왕이 되어 52년간 통치했다. 그는 나라가 부강해지자 교만해졌고, 성전에서 죄를 범함으로 나병환자가 된다. 그 후 그는 성전에 들어가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대하26장, 왕하15:1-7 아사랴).

2. 이사야, 왕이신 하나님을 보다.

*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어느 날 이사야는 주님을 뵈었다.

* 하나님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왕이셨다(6:1, 5).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다.

* 피조된 모든 만물 위에 홀로 뛰어나신(구별되신) 하나님은 거룩, 거룩, 거룩하신 분이셨다. 불꽃같은 존재인 스랍들(seraphim)도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

3. 왕이신 하나님을 만나라.

* 기독교는 이론도, 신념도, 종교도 아니다. 우리의 신앙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 하나님을 만나려면, 기억해야 할 세 가지 사실은

  첫째, 어느 시대에나 그분이 먼저 찾아오신다.

  둘째, 우리 시대에는 성경과 성령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면, 예수님을 통해 나를 만나신다.

  셋째, 만나는 때와 방법은 하나님이 결정하시지만, 확실한 것은 반드시 만나며 그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게 된다.

* 나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가?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4. 하나님을 만난 이사야의 반응

*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을 때 큰 두려움과 절망감이 그에게 몰려왔다. 그는 견딜 수 없어서 탄식하며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의 빛에 드러난 그의 모습은 망할 수 밖에 없는 부정하고 초라한 죄인이었기 때문이다(눅5:8).

* 하나님을 가까이 뵐수록 우리도 그렇게 된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5. 만남은 소명으로 이어진다.

* 이사야는 그 시대의 선지자, 대변인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원하여 순종한다.

* 하나님과의 만남은 항상 소명으로 이어진다. 모세와 제자들에게도 그랬고(출3장, 마4:18-22, 9:9) 우리에게도 그렇다.

* 나는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만났는가? 그렇다면 나의 소명은 무엇인가?

창조주를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1. 헛된 인생

* 인생은 헛되다. 삶에 의미가 없다. 살만한 가치도 없다. 살수록 점점 더 허무해진다. 결국 공허하게 끝나고 만다.

* 쾌락과 술도, 큰 사업, 넓은 집, 무수한 재물과 많은 처첩도(2:1-8) 피곤하고 족함이 없고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다.

* 이것은 이 모두를 최고로 누려본 사람의 고백이다(2:10-11).

2. 허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

*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려면 허무의 ( )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본래 창조주와의 관계 속에서 살도록 창조되었다. 허무는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없이 사는 데서 온다.

* 인생의 허무를 벗어나는 오직 한 길은 가능하면 빨리 나의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를 경외하며 사는 것이다(12:1-14).

3. 그렇다면 창조주를 경외하며 사는 삶은 어떤 삶인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첫째, 우주만물과 만사를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보며 찬양 드리는 삶

* 천하만사에 기한과 때가 있음과(3:1)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시종’을 측량할 수 없음과(3:11)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이 영원히 있는 하나님의 모든 일을 깨닫고(3:14)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영원히 사모하고 찬양하며 살자.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둘째, ‘하나님 앞에서’ ( )는 열고 ( )은 다무는 삶

*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자(5:1).

* 나는 항상 하나님 앞에 서있다. ‘함부로 입을 열지 말자.’ 말을 무조건 적게 하자(5:2-7, 10:14).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셋째,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주신 선물을 누리는 삶

*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소유로 만족하지 못하며 행복할 수 없다(5:10-12). ‘소유’와 ‘누림’은 별개이기 때문이다(6:2-6).

* 그러므로 소유에 집착하지 말라(5:13). 소유에 집착하면 근심과 분노 중에 살다가 허무하게 죽을 것이다(5:16-17).

* 자신의 꾀와 욕망에 속지 말라(7:29, 8:11, 눅12:13-21). 좋은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다(약1:14-17).

* 내 것은 없다(5:15).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일하고 내 몫으로 주신 선물을 누리고 선을 행하며 살라(2:24, 3:12-13,22, 5:18-19, 9:7-10).

* 후회하지 말고 지금 창조주를 찾으라. 그를 경외하며 살라.

여호와를 경외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1. 두려움

* 나는 두려움(겁)이 많은 편인가? 보통인가? 적은 편인가?

* 나는 주로 누구를 혹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2. 여호와를 경외하라.

*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한 분이다. 마10:28

* 그 이유는 무엇인가?

*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다른 두려움들은 사라진다.

* 그리고 죄를 물리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다.

3. 지식의 근본(beginning, foundation)

* 오직 한분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면, 거기서 비로소 지식이 바르게 시작된다.

* 그분이 지성을 만드신, 지식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4. 누가 미련한 사람인가?

* ‘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의 예견대로 오늘날 사회는 정보화 혁명을 거쳐 지식기반 사회로 전환되었다. 지식이 폭발적으로 축적되고 있다.

* 그러나 지식이 많아도 하나님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실상은 ‘지식의 근본’이 없는 미련한 사람이다.

* 더욱이 이 시대는 지식과 지혜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지식이 많아도 지혜가 결핍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 지혜의 근본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잠9:10)

* 하나님을 경외하면 지식과 지혜가 균형 있게 자라간다.

*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가면,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게 된다.

5.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지 말자.

* 충고를 받을 때 혹은 책망하는 말씀(설교)을 들을 때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화를 낸다( ). 외면한다( ). 듣는다( ).

* 듣지 않는 것이 미련함이요 교만이다. (잠9:7-8)

* 많이 배운 사람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역설적으로 미련한 사람이 더 많다. 그들은 오히려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고 더 듣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10:12)

6. 들으라.

* 듣는 것,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참된 지식과 지혜는 싹트기 시작한다.

*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막4:9

* 자녀들과 함께 잠언을 읽자. 소중한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 삶속에서, 가정생활, 일상생활 속에서 말씀에 순종하자. 지혜를 깨닫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될 것이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1. 할렐루야 할렐루(Hallelu, 찬양하라) 야(Yah, Yahweh, YHWH, 여호와)

* 1절에 히브리어로 ‘할렐루야’가 두 번 반복되고 있다.

*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다(출3:13-15, 15:3, 사51:15).

* 146-150편은 ‘할렐루야 시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편들은 찬양을 드릴 때, 누구를, 그의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2. 찬양의 결단

* 우리는 결정들을 내리며 산다. 내 일생 동안 내렸던 결단 중 최고의 결단은 무엇인가?

* 시편 저자는 일생동안 ‘여호와를’ 찬양하기로 결단하고 있다.

* 나도 ‘영혼’의 찬양을 오직 ‘여호와’ 나의 하나님께 내 평생 드리기로 결단하자.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찬양의 이유: 첫째, 홀로 참된 도움이시다.

* 환난 중에 나는 누구 혹은 무엇을 의지하는가?

* 그러나 죽음까지 정복하고 끝까지 나를 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사43:11).

*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찬양의 이유: 둘째, 홀로 창조주이시다.

* 그가 홀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만물을 지으셨다(사42:5-11).

* 하늘과 땅과 바다와 만물의 신비와 광대함을 바라보며,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해본 적이 있는가?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찬양의 이유: 셋째, 영원히 진실하시다.

* 우리는 진실이 무너지고 실종된 세상(호4:1)에 살고 있다.

* 하나님은 영원히 진실한 분이시다.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찬양의 이유: 넷째, 공의의 통치자이시다.

* ‘억눌린 사람들’ ‘주린 자들’ ‘갇힌 자들’ ‘맹인들’ ‘비굴한 자들’ ‘나그네들’ ‘고아와 과부’를 구하고 먹이고 도우시는 영원한 왕이시다.

* 우리는 어떤 백성이 되어야 하는가? 여호와께서는 ( )을 사랑하시고 악인을 벌하시는 의의 통치자, 대대로 다스릴 영원한 통치자이시다(마25:31-46).

* 우리 자녀들이 한 분이신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순복하도록 가르치고, 함께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자.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며 복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1. 예배로의 초청

* 시편 제4권(시90-106편)은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초청한다.

* 예배의 중심에 찬송이 있다.

* 찬송은 즐거움과 ( )함으로 표현된다.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2. 예배의 이유

* 그는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이시기 때문이다.

* 시편 제4권을 통해보면, 첫째, 그는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95:4-6, 96:4-5, 100:3, 102:25, 104:24

* 둘째, 그는 우리의 왕이시다. 95:3, 98:6 그는 통치자이시다. 93:1-2, 97:1, 99편, 103:19 통치에는 심판이 포함된다. 94편, 96:13, 97:8, 98:9, 103:6

* 셋째, 그는 ‘우리의 구원의 반석’이시다. 95:1, 106:4,8,47 3. 인생은 관계다.

* 출생, 성장, 결혼, 가정, 교회, 직장 등 모든 삶이 관계다.

* 관계를 떠나면 삶은 ( )다.

* 인생의 행불행은 관계에서 결정된다. 관계에서 실패하면 결국 모든 것에 실패한다. 관계에서 성공하라.

4. 하나님과의 근원적인 관계

*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창조주-피조물의 관계, 왕-백성의 관계, 목자-양의 관계이다.

* 이 관계를 누리는 것이 예배이며, 그 중심에 찬송이 있고, 기쁨과 감사로 표현된다.

* 예수님은 이 관계를 회복하러 오셨다(고후5:18-20).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5. 결단하고 찬송하며 그에게 나가자.

*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마음을 굳게 하지 말고, 찾아오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믿음으로 선포하고 누리자.

* 기쁨과 감사로 찬송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즐거이 나아가자. 그 분은 우리가 경배할 오직 한분이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무릎을 꿇고 겸손히 찬송을 드리자. 95:6 거기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 관계의 중요성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절대성을 자녀에게 가르치자. ( ) 삶을 살며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다시 걷는 광야에서

반복되는 삶의 어려움 앞에 다시 서는 사람의 절망은 더 깊습니다. 이미 그 목마름의 깊이를 체험한 이전 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찾은 광야에서 시인은 새로운 영적 유익을 얻게 됩니다. 시편 63편은 다윗이 유대광야에서 쓴 시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사무엘하 15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삼하 15:17, 삼하15:30).

다시 걷는 광야에서...

1. 하나님을 향한 ( ), 곧 ( )을 얻었다. (시편 63:1, 시편 63:3)

2. 영혼의 ( )을 얻었다(시편63:5, 시편63:6-7).

3. 믿음의 ( )를 얻었다 (시편 63:11, 삼하 15:18-20, 삼하 15:21).

-숙제-

* 내가 처음 주님을 만났던 날을 기억해보고, 배우자와 함께 이야기 나누기

* 믿음의 동역자인 목원식구들에게 격려 엽서 보내기

사랑의 기다림

기다림은 쉽지 않습니다. 고통스럽고 죽음에 이르게도 합니다. 시편 44편은 도움과 구원을 호소하고 탄원하다 응답 없이 끝납니다. 그러나 미완성의 노래 같은 이 시편이 오늘 우리들에게 두 가지를 알려 줍니다.

첫째, 신자는 고난의 과정을 지날 때 하나님의 언약을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이것은 단지 말씀의 약속을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 희생과 댓가를 치루더라도(시44:19, 22) 그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삶으로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시44:17-18).

* 이때에, 욥의 기대가 가능합니다.“그런즉,(말씀에)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욥23:14).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스런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하나님의 길을 바로 따랐고 그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않고 정한 음식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욥23:9-12). 신실하신 하나님의 일을 기다리는 동안 신자는 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냅니다.

둘째, 아직도 응답 없는 하나님을 기다리며, 신자가 최후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인자 (“헤세드”-자비, 사랑)입니다(44:26).

* 고통과 불확실의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을 잊지 않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신뢰하고 지켜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고 실수하지 않으시며, 실패가 없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십자가에서 자격 없는 죄인인 우리들에게 부어졌습니다.

다윗은 시편23:6절에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사랑)하심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는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멸망의 십자가까지 쫓아오셔서, 우리를 내려 놓으시고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죽음을 대신 죽어 주신 그리스도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이 있었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모든 고통의 기다림 속에서도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롬8:37). 그래서, 신자는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응답 없이 고통스럽게 지나가는 기간에도 주의 사랑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에 매여 신자는 기다림 속에서 절망이 아니라 소망하며 여전히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뻐합니다(시43:5).

복 있는 사람

- 시편은 어떤 책인가?

* 시편 1편은‘복이 있는’ 뜻의 ‘아쉬레’로 시작하고 시편 150편은 ‘할렐루야‘로 마친다.

* 시편 1편은 우리의 인생이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야 함을 가르친다.

- 복 있는 자는 누구인가

* 아쉬레:축하의 인사 & 하나님의 법대로 처신하는 자

* 70인역 성경은 이 단어를 산상수훈(마6)의 단어로 번역함.

1. 죄인의 길을 따르고, 서고, 앉지 않는다.

-따르는 것은 무엇을 쫓아 하는 _____가 되는 것이다. 악인의 본을 따르고 그들의 _____아래 산다

-섬(stand)은 무언가에 빠졌다는 의미다.

-앉음은 악의 머리가 되어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진행한다.

2.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한다.

-헤페츠- 즐거워하다, 기쁨, 소원의 뜻을 가짐

-사람은 소원하는 것을 기뻐한다

-율법은 하나님의 전체적 계시, 그 분의 가르침이다.

-예수님, 하나님, 말씀 사랑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

-묵상은 읊조리고 반복, 학습의 의미에 가깝다

-반복함으로 마음에 새기고 그 빛을 따라 살아간다

-행함으로 인한 기쁨을 얻는다(눅11:28)

3.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다

"렘 17:8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복 있는 자는 하나님을 ___하고 ___하는 사람이다(렘17:7)

-복 있는 자가 맺는 열매는 생동력 있는 말씀의 역사이다.

-열매 맺는 삶의 원인은 말씀을 기뻐하고 행하는 삶이다

- 악인은 누구인가 1. 복 있는 자가 하지 않는 일을 한다.

2. 그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겨는 무가치, 가벼움, 무생명의 상징이다.

-시인이 겨를 말하는 것은 심판을 전제한다.

-탈곡의 시간은 심판이고 영원한 분리가 일어난다.

3.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의인의 모임에 들지 못한다.

"시편11: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4. 멸망한다.

-망함은 인간의 궁극적인 욕구를 만족하지 못한 상태 그리고 하나님과의 분리에서 오는 영원한 멸망이다

-진정한 복은 재물,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로 얻는 기쁨, 말씀에 사로잡혀 말씀대로 사는 삶이다.

- 적용

* 나는 어떤 영향력 아래 사는가,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내 삶에는 어떤 열매들이 맺혀지는가. 좁은 길을 선택하라

하나님의 절대주권

1. 욥의 신앙과 사람됨(1-5절)

*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

2. 하늘에서 일어난 일(6-12절)

*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자, 사탄이 즉각 도전했다(9-11절).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주신 것 때문에 경외하는 것입니다. 주셨던 것을 빼앗아보면 그의 정체가 드러날 것입니다”고 주장했고, 하나님은 허락하셨다.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3. 땅에서 일어난 일(13-19절)

* 욥은 많던 재산을 하루에 잃고 10 자녀도 모두 잃는다.

* 욥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늘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채 고난을 겪는다. 뺨을 맞는데 왜 맞는지도 모른채 맞은 것이다.

* 권선징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세상, 때로 악인이 더 번성하고, 선한 사람들이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하는 세상을 볼 때 어떤가? 그 당사자가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4. 고난 속에서의 욥(20-22절)

* 그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다. 자식을 잃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아픔을 모를 것이다.

* 그러나 그가 엄청난 고통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식과 재산을 ( )앗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 재산과 자식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셨고 다시 찾아가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 거두어가셨을 때에 그는 원망하기보다 그 동안 누리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배하였다.

5. 계속되는 고난(2-37장)

* 실패한 사탄은 ‘뼈와 살’을 치는 또 다른 고난을 청구한다.

* 드디어 욥의 아내가 욥을 향하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외친다(2:9). 열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이런 반응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 그러나 여기서도 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한다(2:10).

* 친구들과 변론에서 ‘자기 의’를 의지하며 결국 욥도 무너지지만,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은 욥을 다시 빚어내신다(23:10).

6. 고난의 의미(38-42장). 왜 하나님은 고난을 허락하실까?

* 우리는 고난의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38:1), 그 속에서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주신다(42:5).

* 사탄은 오늘날도 우리의 동기를 의심하면서 온갖 고난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때로 하나님은 시험을 허락하신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주신 것을 사랑하는가?

* 고난을 당할 때 왜 그 고난을 당하는지 이유를 몰라도, 나는 고난의 시작과 결과를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나에게 조국은 무엇인가?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1. 나는 누구인가?

* 느헤미야는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와서 이민생활을 하게 된 유다인의 후손으로 페르시아 제국에서 태어나 살아왔지만 그에게는 조국이 있었고 그의 정체성은 유다인이었다.

* 그렇다면 이민의 땅 미국에서 부모의 세대를 살고 있는 나와 우리 후손에게 조국의 의미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

'유다...의 형편을 물은즉...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불탔다 하는지라...'

2. 고국에서 들려온 슬픈 소식

* 조국에서 돌아온 그의 동생 하나니(7:2)가 전해준 소식은 가슴 아픈 소식이었다.

* 우리도 조국으로부터 북한동포의 박해와 기근, 탈북자들의 고통, 남한의 분열과 부패 등 슬픈 소식을 듣는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3.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

* 괴롭고 충격적인 소식을 들으며 그는 남을 비난하지 않았다.

* 느헤미야에게 조국의 죄는 ‘그들’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였고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집의 죄였기 때문이다(1:6-7).

* ‘대한국인’은 누구도 조국에 침을 밷을 자격이 ( )다. 느헤미야에게 유다가 ‘우리 이스라엘’이었던 것처럼(1:6), 대한민국은 ‘우리’ 조국이기 때문이다.

* 주저앉아 운 후에, 그는 이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 나는 조국의 문제로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기억하옵소서... 주여 구하오니...오늘...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4. 행동의 사람: 느헤미야

* 그의 기도는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제가 돌아가겠습니다”는 행동의 결단 기도로 이어졌다.

* 그는 그 결단을 ‘오늘’ 실천하기 위해 은혜를 구했다(2:5). 그는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일을 ( )로 미루지 않았다.

5. 숙제

*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조국을 위해 기도하자.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 하신 말씀대로(마 19:30) 우리 조국이 주님의 다시 오실 길을 준비하는 선교의 나라가 되도록 함께 기도하고 동참하자.

* 조국의 허물은 ‘우리’ 죄로 하나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빌자.

* 조국을 위해 내가 일할 분야를 찾고 ‘오늘’부터 행동으로 옮기며 기꺼이 대가를 치르자. 분열된 조국의 치유, 북한 동포와 탈북자들을 위해 ‘오늘’ 결단하고 행동에 나서자.

*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자.

신앙의 다음 세대를 일으키라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성전을 건축하라...'

1. 1차 귀환(주전 538년)

* 고레스의 조서로 스룹바벨의 인도하에 42,360명의 유대인이 포로로 끌려갔던 바벨론 땅에서 유다 땅으로 돌아와 무너진 ( )을 재건한다. (1-6장)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스라라 하는 자가...'

2. 2차 귀환(주전 458년)

* 다시 80년이 지난 후 아닥사스다의 조서로 ‘학자 겸 제사장’ 에스라의 인도하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1,700여명의 유대인들이 아하와 강가에 집결한다. (7장-8:20)

* 주전 605-586년에 포로로 끌려왔던 사람들의 5, 6대 후손인 이들은 조국을 잊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옥과 모든 생계 터전을 포기하고 나선 것이다.

*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을까? (1:1-5, 7-8장)

* 이민 2, 3 세대인 우리 자손들은 어떠한가? 100여 년이 더 흐른 후 우리 후손들에게 조국의 의미는 무엇일까?

' 그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3. 신앙의 본을 보이다.

* 어린아이들과 함께 4개월 동안 걷는 힘든 여정이었고, 도처에 대적과 강도떼가 널려있는 위험한 길이었다. (7:9, 8:31)

*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왕에게 도움, 곧 ‘보병과 마병’을 구하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길이었다.

* 내 생각에는 어느 길이 더 쉽고 어느 길이 더 안전할까?

*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고 자신들의 신앙에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그들은 둘째 길을 택한다.

* 그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겸손히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정확하게 응답하셨다. (8:21-23, 8:31)

* 이 과정을 통해 어린아이들은 부모들의 신앙을 보았고, 살아 계신 하나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 우리도 자녀들이 신앙을 ( )고 배우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와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한다.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사로잡혔던 자의 자손 곧 이방에서 돌아온 자들이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는데...'

4. 그들의 최우선순위: 예배

* 도착한 그들은 먼저 사람들을 만나거나 살 곳을 찾기 위해 흩어지지 않았다. 3일간 쉬고 준비를 한 후, 그들이 처음 한 일은 하나님을 ( )하는 것이었다. (8:32-35)

* 우리도 삶의 최우선순위를 예배에 두고, 가정에 예배를 회복하자. 그리고 어디에 머물든지 찬송과 예배의 제단을 쌓자.

* 자녀들에게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이보다 더 큰 복은 없다.

예배를 회복하라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1. 서론:

* 역대하는 ①성전을 건축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②우상숭배, 탐심, 정욕으로 성전을 더럽히다가, ③성전이 불타 무너지고, ④다시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으로 끝이 난다.

* 오늘날도 ‘지상과제’는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를 회복하는 것에 있다.

2. 성전은 반드시 택하신 곳에 세워져야 한다.

* 하나님의 백성은 소견대로 ‘아무 곳에서나’ 예배할 수 없다. 이방인들의 흩어진 예배의 처소들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이 택하신 그 곳에서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한다. 신12:1-14

3. 하나님이 택하신 곳은 첫째 모리아 산이었다.

* ‘오직 유일한 여호와’를 예배하는 성전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무너진 곳에 세워졌다. 창22:1-13, 신6:4

* 오늘날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무너지는 그곳에서 오직 한분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회복된다.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4. 하나님이 택하신 곳은 둘째 타작 마당이었다.

*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은 자기를 과시하던 교만이 하나님의 징계(심판)로 철저히 무너진 곳에 세워졌다. 대상21장, 22:1

* 오늘날도 홀로 하나이신 여호와를 향한 예배가 회복되려면, 바벨탑처럼 쌓여져가는 인간(나)의 교만이 무너져야 한다.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칼에 살아 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매... 노예가 되어...칠십년을 지냈으니...(36:19-21)'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성전을 건축하라...(36:22-23)'

5. 예배를 회복하라.

* 성전이 인간의 우상과 교만으로 회복될 수 없도록 더럽혀지자 하나님은 성전을 던져버리셨다. 왕상9:6-7 불태우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다시 ‘성전을 건축하라.’

* 6백여 년이 흐른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선언하셨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2:19-22 6. 포로생활 70년의 의미

* 예언대로 성전은 주전 586년에 무너지고 516년에 재건된다.

* 그러므로 성전이 무너진 것이 멸망이었고, 성전이 재건되고 예배가 회복되었을 때 비로소 포로생활이 끝난 것이다.

* 오늘날도 주의 백성이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모여 ( )를 회복하기까지 죄의 포로생활은 끝난 것이 아니다.

* 가정, 교회, 직장, 선교지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성전을 세우고 그곳에 예배가 회복되게 하라. 요4:20-24, 엡2:21